제1장 : 털실 미로 4/16

조각보 왕이불

by마광훈

“아, 네. 평론가님. 영광입니다. 어떤 제품을 찾으시나요? 저희가 이번 시즌에 밀라노에서 직수입한 최고급 캐시미어 블렌드 제품이 있는데…”


"캐시미어는 너무 약해요. 제가 하려는 작업은 스케일이 꽤 크거든요. 순수 100퍼센트 이탈리아산 메리노 울, 그것도 최상급인 '엑스트라 파인' 등급으로만 필요합니다. 굵기는 뜨개질용 중에서도 가장 굵은 빅 얀(Big Yarn) 스타일로요."


“빅 얀으로 엑스트라 파인 등급이라... 재고가 꽤 넉넉지 않을 텐데요. 용도가 어떻게 되시나요? 스웨터나 머플러 몇 개 정도 뜨시게요?”


상점 주인은 내 주문의 스케일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려다, 의자가 휘청거리는 바람에 전신주를 잡듯 바카라상을 꽉 붙잡았다.


"아뇨. 머플러 따위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한 마을 전체를 털실로 엮는 거대 행위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거든요. '산그늘 마을의 뜨개질 그물'이라는 제목으로요. 치매 노인의 배회를 막는 물리적 보안 시스템이자, 삭막한 농촌에 색채의 숨결을 불어넣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죠."


“네...? 마을 전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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