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4절 : 희망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HOPE : 희망이란 무엇인가 | 1장.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by마광훈

HOPE : 희망이란 무엇인가 | 1장.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딸아이는 잠깐 방으로 들어가더니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가 기계체조를 시작한 지 고작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목에 걸었던 은메달 하나와 동메달 하나, 그리고 4개월 차에 접어들며 출전했던 충청북도 도대회에서 휩쓸어 온 다섯 개의 은메달이었다.


아이는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메달들을 조심스레 목에 걸고 다가와 내 무릎에 턱을 괴며 불쑥 입을 열었다.


딸: “아빠, 나 이제 메달이 일곱 개나 생겼잖아. 희망도 이렇게 한 번 가지면 평생 내 거가 되는 보물 같은 거지?”


아이의 눈에는 희망이 마치 메달처럼 획득하고 나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물건’처럼 보였나 보다. 나는 달빛에 비친 아이의 작은 두 손을 끌어와 가만히 쥐어 보았다. 또래 아이들처럼 보들보들해야 할 손바닥에는 철봉과 평행봉을 쥐고 버티느라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 있었고, 껍질이 벗겨져 반창고를 덧댄 자국이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거친 손을 살살 문지르며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빠: “아니야. 희망은 이 빛나는 메달이나 보물 상자처럼 서랍 속에 가두어 둘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오히려 희망은 네가 매일 체육관에서 흘리는 ‘땀방울’에 더 가까워.”


딸: “땀방울? 땀은 훈련할 때마다 그냥 나는 거잖아.”


아빠: “맞아. 네가 뜀틀을 향해 달려가고, 철봉을 꽉 쥐고 매달리지 않으면 땀은 나지 않지? 희망도 그래. 가만히 놔두면 흔적도 없이 말라버리고 말아. 그래서 아빠는 희망이 멈춰 있는 ‘명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사’라고 생각해.”


딸: “명사? 동사? 아빠, 나 국어 시간에 배웠어! 명사는 이름이고, 동사는 움직이는 말이지?”


아빠: “오, 우리 딸 공부 열심히 했네! 맞아. ‘희망’이라는 글자만 보면 멈춰 있는 이름 같지만, 진짜 희망은 ‘희망하다’라는 움직임 속에만 있거든. 네가 받은 메달들을 한번 볼까?”


나는 아이의 목에 걸렸던 무거운 메달 일곱 개를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아빠: “이 메달 자체는 멈춰 있는 ‘명사’야. 결과물이지. 하지만 네가 기계체조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그리고 네 달 만에 이 메달들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건 기적이나 마법이 아니었어. 손바닥이 벗겨져서 쓰라린데도 다시 하얀 가루를 묻히고 봉을 잡았던 그 시간들, 평균대 위에서 수십 번을 떨어지고도 다시 위로 올라갔던 그 수많은 ‘움직임’들이 있었잖아. 그 끊임없는 ‘동사’들이 모여서 이 결과를 만들어낸 거야.”


딸아이는 자신의 굳은살 박인 손바닥과 메달을 번갈아 쳐다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 “만약 네가 ‘나는 은메달을 딸 수 있는 아이’라는 이름표만 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메달은 그냥 꿈으로 끝났겠지. ‘나도 저 위를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라고 믿으며 힘껏 발구름판을 밟고 뛰어오르는 그 동작 하나하나가 바로 희망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이란다. 우리가 매일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희망도 매일매일 네가 몸과 마음을 움직여서 만들어내야 하는 활동인 거야.”


아빠: “자전거를 탈 때도 똑같아. 네가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쓰러지고 말지? 희망도 네가 오늘을 살아내려는 노력을 멈추는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린단다. 희망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시동을 걸고 땀을 흘려야 하는 훈련과도 같아.”


딸: “매일매일? 그럼 조금 힘들기도 하겠다. 체조 연습처럼 매일 힘들어도 하는 거잖아.”


아빠: “물론 힘들 때도 있지. 손이 까져서 아프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신기한 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네 몸에 더 큰 근육이 생기고 힘이 붙는다는 사실이야. 처음엔 평균대 위에 서는 것조차 무서웠지만, 자꾸 오르다 보니 이제는 그 위에서 펄쩍 뛰어오를 수도 있게 되었잖아? 희망도 처음 마음을 먹기가 어렵지, 한 번 ‘희망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어떤 절망의 언덕이 앞을 가로막아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단다.”


도대회 경기장, 그 넓고 낯선 공간에서 작은 몸으로 공중을 가르며 날아오르던 아이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착지하며 흔들리던 발끝을 기어코 꼿꼿하게 세워내던 그 악착같은 순간. 그것은 단순히 점수를 얻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아지겠다는 아주 강렬한 생명력이자 살아 꿈틀거리는 희망의 몸짓이었다.

딸아이는 이제 무언가 깊이 깨달은 듯 눈을 반짝이며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딸: “아빠, 그럼 나 이제부터 희망을 서랍에 ‘가지고’ 있는 사람 말고, 매일 땀 흘리면서 희망을 ‘하는’ 사람이 될래. 내일 체육관에 가면 더 높이 점프하는 걸 ‘희망’하면서 힘껏 뛰어볼게!”


아빠: “그래. 우리 딸이 뜀틀을 향해 달려가는 그 발소리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희망이 될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품을 하더니 숨소리가 점차 규칙적으로 변해가며 내 품 안에서 잠들었다. 나는 잠든 아이의 굳은살 박인 작은 손을 오랫동안 쓰다듬었다.


희망은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보는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투여하고 땀을 흘려야만 생명력을 유지하는 역동적인 활동이다. 손바닥이 벗겨지도록 철봉을 고쳐 쥐고, 수없이 떨어지면서도 다시 평균대 위로 올라서는 구체적인 행동들이 모여 희망이라는 단단한 문장을 완성해 가듯, 희망은 머물러 있는 상태가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내는 존재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희망은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흐르기 마련이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