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2절 : 기다림인가, 움직임인가

HOPE : 희망이란 무엇인가 | 1장.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by마광훈

HOPE : 희망이란 무엇인가 | 1장.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거실 유리창에 작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부딪히기 시작했다. 조금 전 날렸던 종이비행기가 바닥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며, 딸아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아이는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딸: “아빠, 그럼 희망은 기다리는 거야? 아니면 움직이는 거야?”


나는 식어가는 찻잔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미지근한 온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이 질문은 희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다.


아빠: “그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 하는 부분 중 하나란다. 많은 사람이 희망을 그저 ‘기다림’이라고만 착각하곤 해. 하지만 진짜 희망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자라나는 거란다.”


딸: “근데 아빠, 엄마가 가끔 너무 힘들 때 “조금만 기다려보자, 언젠가는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잖아. 그럼 엄마가 말한 건 희망이 아니라는 거야?”


아이의 눈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엄마의 그 말이 혹시나 잘못된 것이었을까 봐 염려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빠: “아니야, 그 말 속에도 분명 희망이 있지. 다만 그건 ‘마음의 자세로서의 희망’ 이야. 하지만 그 마음이 우리를 살게 하려면 결국 ‘행동으로서의 희망’ 으로 이어져야 한단다. 희망은 기다림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움직임이라는 물을 주지 않으면 결국 시들어 버리는 씨앗과 같거든.”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을 가리켰다.


아빠: “너 혹시, 저번에 학교에서 가져온 콩 심었을 때 기억나니? 흙을 뚫고 싹이 터져 나오던 그 순간 말이야.”


딸: “응! 기억나. 매일매일 물을 주면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까 갑자기 흙을 뚫고 초록색 싹이 쏙 올라왔었어! 진짜 신기했지.”


아빠: “그랬지. 그런데 만약 네가 ‘언젠가는 싹이 나겠지’라고 생각만 하고 물도 주지 않고 햇볕도 쬐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딸: “음… 아마 그냥 마른 흙 속에서 썩어버렸을 거야.”


아빠: “바로 그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다림만으로는 생명이 태어나지 않아. 희망은 ‘움직이는 기다림’ 이어야 한단다. 그냥 앉아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언젠가 올 그날을 굳게 믿으면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 그게 진짜 희망의 모습이지.”


딸아이는 내 말을 곱씹는 듯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딸: “그러면 아빠,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만 하는 건 기다리는 희망이고, 바카라상에 앉아서 직접 공부하는 건 움직이는 희망인 거네?”


아빠: “하하, 우리 딸 정말 정확하게 이해했네! 맞단다.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기도는 우리 마음의 방향을 정해주지만, 그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건 결국 공부하는 네 손과 눈이지. 희망은 행동을 동반한 믿음이란다.”


나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리첼 E. 굿리치가 남긴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희망은 모든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연료이다.’
— Richelle E. Goodrich —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연료가 없으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듯,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엔진을 돌리는 것은 결국 희망이라는 연료다.


아빠: “어떤 작가가 ‘희망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 속에 있는 연료’라고 말했단다. 연료가 없으면 자동차가 조금도 나갈 수 없듯이, 희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야. 그저 앉아서 위로받기 위해 먹는 약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인 셈이지.”


딸: “근데 아빠,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잖아. 너무 지치고 마음이 무거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 그럴 때는 어떻게 움직여? 그럴 때도 희망을 가질 수 있어?”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아마 어른인 나보다 더 자주 그런 막막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아빠: “그런 순간이야말로 희망이 가장 절실한 때지. 그럴 땐 거창하게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돼. 그저 네 마음속에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남아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그 불씨가 꺼지지 않게 아주 살살 숨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움직임의 시작이야.”


딸: “숨을 불어넣는 거?”


아빠: “응. 아주 사소한 것들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 좋아하는 바카라의 한 페이지를 읽는 것, 누군가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것, 아니면 차라리 펑펑 우는 것조차도 희망의 움직임이 될 수 있어. 그건 네 마음이 여전히 살아있고, 상황에 반응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


딸: “울기조차도 움직임이라고?”


아빠: “그럼. 희망은 항상 웃는 얼굴을 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란다. 울 수 있다는 건 네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정말로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은 눈물조차 흘리지 않거든. 슬퍼하고 아파하는 그 역동적인 감정 자체가 희망이 다시 살아나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이란다.”


창밖의 비는 이제 세상을 온통 적시고 있었다.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만들어냈다.


딸: “비도 움직이네. 하늘에 가만히 있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니까.”


아빠: “맞아. 구름이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면 비는 내리지 않았을 거야. 수증기가 모이고, 바람이 불고, 무거워진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환이 있기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거란다. 희망도 그런 순환 속에 있어. 움직임 속에서만 생명이 이어지고, 멈추는 순간 희망은 박제가 되어버리지.”


나는 손을 뻗어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빗방울을 손바닥에 받아보았다. 차가운 촉감이 손 끝을 자극했다.


아빠: “봐, 이 빗방울들이 흙 속으로 스며들면 내일은 저 잎들이 더 푸르게 반짝이겠지? 희망도 이렇게 조금씩, 우리 삶 속에 소리 없이 스며든단다. 하지만 그건 가만히 멈춰있는 ‘기다림’이 아니라 치열하게 아래로 내려와 뿌리를 적시는 ‘자라남’인 거야.”


딸: “그럼 기다림은 나쁜 거야?”


아빠: “아니, 결코 나쁜 게 아니야. 기다림은 꼭 필요해.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멈춘 기다림’이 아니라 ‘준비하며 나아가는 기다림’이어야 한다는 뜻이야. 바람이 불 때까지 연을 들고 가만히 서 있는 건 기다림이지만, 그동안 연줄을 튼튼하게 감고 연을 꼼꼼히 손질하는 건 움직임이지. 희망은 그 기다림과 움직임의 정교한 균형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란다.”


딸: “와… 그럼 희망은 ‘기다리면서 움직이는 마음’이네.”


아빠: “정말 멋진 표현이다! ‘움직이는 기다림’, 그게 바로 희망의 본질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희망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거야. 미래를 꿈꾸는 건 좋지만, 오늘 한 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그 미래는 영원히 다가오지 않거든.”


딸: “아빠, 나 그럼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계획했던 공부를 꼭 해야겠다. 그게 내 희망을 움직이게 하는 거 맞지?”


아빠: “하하, 그럼! 희망은 결코 거창한 게 아니야. 내일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해 오늘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 그게 바로 살아 움직이는 희망이란다.”


빗소리가 서서히 잦아들 무렵, 딸아이는 바닥에 놓여 있던 종이비행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창가로 다가가 비가 그친 뒤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딸: “아빠, 이번에는 바람이 올 때까지 잘 준비하며 기다렸다가 날려볼게.”


아빠: “그래. 그리고 바람이 느껴지는 순간, 망설이지 말고 던지렴. 그게 네 희망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순간이니까.”


비행기는 이번에도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아까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멀리, 비가 갠 하늘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희망은 그저 기다리는 요행이 아니라, 바람의 결을 읽고 온 힘을 다해 던지는 용기다.’

비 갠 뒤의 맑은 공기 속으로 비행기를 띄워 보낸 아이의 작은 손끝에서, 나는 막연한 기다림 너머의 것을 보았다. 기다림은 그저 희망을 품기 위한 조용한 시작점일 뿐이다. 그 기다림이 온전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정성껏 종이를 접고 팔을 뻗어 날려 보내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움직임’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희망은 저 멀리 손닿지 않는 곳에 떨어지는 기적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평범한 시간 속에서 내가 행하는 작은 선택과 실천들을 거름 삼아 자라난다. 바람을 타지 못하고 손에 쥐여 있기만 한 종이비행기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듯, 제자리에 멈춰 선 희망은 이내 차갑게 정체되고 만다. 그러나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힘껏 던져진 움직이는 희망은,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내일이라는 문을 여는 가장 확실한 열쇠가 될 것이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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