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E : 희망이란 무엇인가 | 1장.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HOPE : 희망이란 무엇인가 | 1장.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며칠 뒤 늦은 밤, 마을의 작은 도서관 1층 봄눈 카페에서는 열두 명의 선생님이 뿜어내는 열기가 가득했다. 시골 마을의 무너져가는 학교를 다시 살리겠다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꿈을 위해 대가 없이 모인 이들이었다. 지친 어깨 위에 밤잠을 아껴가며 치열하게 토론하던 이들의 눈에는 정직하고 뜨거운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딸아이는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마중 나와 봄눈 앞에서 나를 반기면 안아줬다. 비가 갠 낭성의 밤공기는 비릿한 흙내음과 함께 서늘하게 뺨을 스쳤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서 흙길을 걷기 시작했다. 까만 밤하늘 위로는 듬성듬성 박힌 별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맹렬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한참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던 아이가 내 손에 힘을 주며 내 손을 꽉 쥐며 물었다.
딸: “아빠, 아까 도서관에서 어른들이 이야기할 때 말이야. 희망은 혼자 꾸는 꿈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나 혼자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체조를 하면 안 되는 거야? 꼭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해야만 해?”
아이의 질문에는 온전히 ‘나만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무언가를 타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감이 동시에 섞여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아이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빠: “아니야, 혼자서 희망을 품는 것도 아주 귀하고 멋진 일이지. 하지만 저기 밤하늘의 별을 한번 봐 보렴. 저기 혼자 떠 있는 별도 참 예쁘지만, 별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별자리’를 만들 때 우리는 비로소 캄캄한 밤에도 길을 찾을 수 있거든. 희망도 그 별자리와 같단다.”
딸: “별자리? 그건 그냥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준 거잖아.”
아빠: “맞아. 이름은 사람들이 상상해서 붙였지만, 그 별들이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기에 가능한 일이지. 만약 저 별들이 다 제각각 멀리 흩어져서 자기 혼자만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침반도 없던 옛날, 먼바다를 항해하던 선원들이나 사막을 걷던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헤맸을 거야. 우리 삶도 그래. 나 혼자 꾸는 꿈은 내 앞길만 좁게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지만,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같이 꾸는 꿈은 세상을 밝히고 누군가에게 길을 안내하는 커다란 지도가 된단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래전 아내의 우울증으로 가족 전체가 깊은 침묵 속에 가라앉았던 힘든 시간들을 떠올렸다. 만약 그때 우리 가족이 각자의 슬픔 속에만 갇혀 있었다면, 우리는 그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괜찮아질 거야”라는 작은 희망을 공유했을 때, 그 희망은 비로소 실재하는 힘이 되었다.
아빠: “겨울에 마당에서 피우는 모닥불을 떠올려봐. 장작 하나가 혼자 탈 때는 금방 꺼지기 쉽고 불길도 약하지. 하지만 장작 여러 개를 모아놓으면 서로 온기를 나누며 훨씬 더 크고 오랫동안 타오른단다. 희망도 그 장작불 같아서, 누군가의 희망이 나의 희망과 만날 때 비로소 어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큰 불꽃이 되는 거야.”
딸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온 마을 어귀를 한 번 돌아보았다.
딸: “아... 그래서 아빠가 매일 동네 어른들이랑 모여서 학교를 새로 만들려고 회의하는 거야? 혼자서 만드는 건 힘드니까?”
아이의 영특함에 나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빠가 무얼 위해 땀을 흘리는지 곁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만큼은 아이에게 온전히 전해지고 있었다.
아빠: “정확해. 내 아이 혼자서만 공부를 잘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 개인의 작고 따뜻한 희망이야.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며 이웃들이 손을 잡는 건, 공동체의 거대한 희망이지. 혼자서 뛰어가면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할 수는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함께 걸어가면 더 멀리, 그리고 즐겁게 갈 수 있단다. 희망은 나누면 나눌수록 내 몫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지는 신비한 성질을 가지고 있거든.”
딸: “근데 아빠, 가끔은 다른 사람이 내 희망을 안 믿어줄 때도 있잖아. ‘그게 되겠어?’ 하고 놀리면 어떡해?”
아빠: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세상 모든 사람이 항상 우리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꼭 기억하렴. 네가 가슴속에 품은 선한 희망의 씨앗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희망은 절대 죽지 않아. 희망은 최소한 ‘둘’이 모일 때 완성을 향해 나아간단다. 아빠가 네 꿈을 믿고, 네가 엄마의 꿈을 믿어주는 것. 그 작은 연결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야.”
가로등 하나 없는 밤길을 걷는 동안, 나는 아이의 작은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아이는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한 듯, 단단하고 평온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아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존재한단다. 네가 체조를 하다 다쳐서 아파할 때 아빠의 마음도 찢어질 듯이 아프고, 네가 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을 때 아빠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쁜 걸 보렴. 우리의 희망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서로의 마음을 타고 흐르는 거야.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에 머물기 쉽지만, 함께 꾸는 꿈은 기필코 단단한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
딸: “응, 아빠. 나도 이제 혼자 빛나는 별 말고, 친구들이랑 서로 손을 꽉 잡고서 나만의 멋진 별자리를 만들어볼래.”
아이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며 우리는 다시 집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천 년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간절한 마음으로 선을 이어 완성했을 별자리들이 오늘 밤에도 변함없이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쓰여 내려가는 나의 이 보잘것없는 기록 또한, 언젠가 길을 잃고 서성이는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별자리를 완성하는 단 하나의 작은 별빛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우리가 기꺼이 서로의 희망을 증명해 내는 온기 가득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잠든 마을의 밤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