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맨2
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 게임 5인방 중 하나인 남쪽 친구가 어느 날 할 말이 있다며 모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어? 록맨? 2야? 당시 우리 사이에서 록맨은 게임 실력 측정기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2편이 나오다니! 아직 1편을 깨지 못한 친구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우리 중에서 록맨 1편을 깬 사람은 나와 남쪽 친구, 단 둘이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록맨 1 클리어 쇼(?)는 친구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우리 학교의 전설이었다.
“마이즈! 나와 겨루자!”
게임 팩을 손에 든 채 남쪽 친구는 갑작스레 도전했다. 둘 중 누가 먼저 록맨 2를 깨는지 승부하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일단 나에게는 록맨 2가 없었다. 남쪽 친구는 내가 게임을 구할 때까지 플레이를 안 하고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나 같아도 이기기 위해 몰래 연습을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남쪽 친구는 하루 종일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외동아들이기에 자기 방이 있었고, 과외도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동생과 방을 같이 쓰고 매일 그룹 과외도 가야 했다. 승산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알 리가 없는 다른 친구들이 등을 떠밀었다.
우리 둘이 록맨 2 대결을 할 거라는 말에 게임에 관심 없던 친구들도 들썩였다. 록맨 1의 클리어 쇼(?)를 본 아이들이 소문을 부풀린 탓이다. 관람을 예약하는 친구들까지 생겼다. 나에게 기대를 갖는 친구들 앞에서 못하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일단 수락하고 나서 록맨 2를 구하기 위해 조금 먼 동네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리고 며칠 늦게, 나는 록맨 2를 시작했다. 예상대로 먼저 클리어한 사람은 남쪽 친구였다. 하지만 자랑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 나도 어젯밤에 클리어했어!
대결 쇼(?)를 하려면 날을 잡아야 했다. 다행히 부모님들의 사정과 여러 이유를 통해 게임 시연회는 한주 뒤로 밀렸다. 이 틈에 어떻게든 게임을 깨야만 했다. 망신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 학교 록맨의 전설은 내가 이어가고 싶었다. 가족들이 잠든 틈에 몰겜을 하며 록맨 2에 매진했다. 하지만 게임 시연회 전 날까지도 결국 엔딩을 볼 수 없었다. 불안한 거짓말을 등에 업은 채 나는 남쪽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게임기는 한 대뿐이고 TV도 하나뿐이었으므로 우리의 대결은 조금 묘하게 변했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으면 다음 사람이 이어서 하는 방식이었다. 엔딩까지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누가 더 기여했는지를 판정하자고 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지만 남쪽 친구의 집에 오니 어쩐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나의 록맨 1 클리어 전설이 만들어진 바로 그 장소였으니까.
이상할 정도로 게임이 잘 되기 시작했다. 록맨 2가 이렇게 쉬운 게임이었나? 아니면 미국 판이 좀 더 쉬운 걸까? 어쩌면 이 장소 때문일까? 우리는 번갈아 가며 플레이했고 사이좋게 8명중 4명씩의 보스를 쓰러뜨렸다. 그렇게 플레이하던 끝에 혼자서는 클리어하지 못했던 와이리 성 후반부에 도달했다. 남쪽 친구는 능숙하게 스테이지를 진행했고, 막히는 구간이 지난 뒤부터는 나도 큰 문제없이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날 나는 처음으로 록맨 2의 엔딩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것은 누구였을까?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누가 더 잘하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중요한 것은 록맨이 닥터 와이리의 야망을 분쇄하는 것 아닌가. 집에 돌아온 뒤, 다시 록맨 2를 플레이했다. 어제까지 그렇게 어려웠던 구간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플레이한 것은 어쩐지 반칙 같은 느낌이라서 혼자서 다시 처음부터 클리어했다. 그제야 제대로 게임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인지 친구들 사이에서 그날의 플레이는 그리 이슈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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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록맨 2. FC. 캡콤.
록맨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유명한 작품. 전작보다 늘어난 보스의 숫자나 처음으로 도입된 패스워드 시스템 등 볼륨의 확장과 더불어 편의성도 좋아졌습니다. 동시에 난도는 낮아짐으로써 조금 더 많은 유저가 즐길 수 있게 되기도 했지요. 이 작품의 리소스는 패미콤으로 나온 모든 록맨 시리즈에 계속 사용되었기에 시스템과 콘셉트를 확립한 록맨 1에 이어 사실상 시리즈의 근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추억은 억천만’이나 ‘에어맨은 쓰러지지 않아’ 등 록맨 2의 추억을 기반으로 한 노래 들이 나오면서 오래도록 회자된 작품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