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

은하영웅전설

by마이즈

어릴 때부터 바카라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서점에도 자주 들르곤 했는데, 어느 날 심상찮은 제목의 바카라을 발견했다. 은하영웅전설. 어른들이 읽는 바카라 서가에 꽂혀 있었지만, 제목에서 강한 끌림이 있었다. 우주도, 영웅도, 전설도 중학생에게 두근거릴만한 요소였으니까. 이 세 가지가 함께 있는 제목의 바카라이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임 북을 사려고 모았던 돈으로 바카라을 구매하고, 집에 와서 읽었다. 앗. 속았다. 한 권으로 끝나는 내용이 아니었잖아? 그때부터 다음 권이 언제 나올지를 오매불망 기다렸고 출간되는 즉시 실시간으로 은하영웅전설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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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렬했던 순간은 2권의 마지막 부근을 읽을 때였다. 동생이 게임을 하자고 하는데, 바카라이 얼마 남지 않아 마저 읽고 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날은 결국 게임을 하지 못했다. 바카라은 금방 다 읽었지만 그 뒤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소설 안에서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주인공 중 하나라고 생각되어 마음을 준 캐릭터가 사망한 것이다. 평새 바카라을 좋아하던 나 스스로도 바카라 때문에 그렇게 오열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은 늦은 밤까지 눈물이 흘렀다. 식사도 못할 정도였다.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독서 중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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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은 나의 중학교 시절의 한 축을 담당했다. 완독 후 외전이 출간되었고 외전까지 읽은 뒤에도 계속 생각이 났다. 작품에 대한 애정은 소설에서 시작해서 애니메이션으로 번졌고, 당연히 게임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버전의 게임 중 처음으로 접한 것은 의외로 패미콤 버전이었다. 표지만 보고 앞뒤 볼 거 없이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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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게임을 켜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장르였고 일본어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 인걸! 꾸역꾸역 플레이를 이어가면서 어떻게든 게임 방법을 조금씩 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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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은하영웅전설을 다시 읽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다시 읽었다. 취업을 한 이후에도 읽었고, 이직한 뒤에도 다시 읽었다. 열 권이 넘는 장편임에도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에게 감화되었다. 하지만 처음 읽을 때, 나를 오열하게 만들었던 캐릭터에게는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았다. 곧 죽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2권의 마지막 부분을 지날 때마다 과거를 떠올린다. 이 부분에서 그렇게 울었었지. 그때는 왜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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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많은 버전의 은하영웅전설이 나왔다. 그중에는 나를 슬프게 한 빨간 머리의 캐릭터가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십 수권의 내용 중 초반에만 나오는 캐릭터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럴 때면 패미콤 판 은하영웅전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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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재 초반에 나온 게임이기 때문일까. 이 게임에서는 주인공 옆에 붉은 머리의 부관은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다. 어쩌면 이 캐릭터가 죽을 거라는 것을 모르던 시기에 만든 걸까? 아니면 최소한 게임에서 만큼은 살리고 싶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패미콤 판에서 주인공으로 고정된 황금빛 황제의 옆 자리에는 역시 붉은 머리의 부관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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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은하영웅전설. FC. 케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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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의 명작 소설을 게임화 했습니다. 많이 알려진 것은 PC판이지만, 그보다 먼저 패미콤으로 출시되었지요.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자리 잡기 이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아닌 콘솔 기기의 십자 패드로 대응되는 게임이라서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만, 원작의 팬 입장에서는 캐릭터의 얼굴과 함대 전의 연출 만으로도 두근두근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략 시뮬레이션이 많아진 현재에 다시 해보려니 너무 단순하게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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