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믹 런너 체르노브
오락실에 갈 때마다 곁눈질로 보게 되는 게임이 있었다. 우주복을 입은 인간 같기도 하고, 로봇 같기도 하고, 슈퍼 히어로 같기도 한 캐릭터가 끊임없이 달리는 게임이었다. 엄청나게 높은 점프를 하며 두꺼운 레이저를 팡팡 쏘아대는 것만 보면 강력한 히어로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계속 달리는 모습이 어쩐지 추해 보여서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다. 오락실마다 항상 있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가끔 눈에 띌 때마다 화면 앞에서 게임을 구경했다. 하지만 매번 고민 끝에 결국 동전을 넣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게임은 수없이 많은데, 유독 이 게임만 하기 싫은 이유를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학교에서 가장 싫은 수업은 체육이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숨을 헐떡였고 선생님은 매번 나를 열외 시켜 주셨다. 모두가 달리는 운동장 한편에서 아이들의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선천성 천식. 호흡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다른 아이들보다 9배나 좁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만 달려도 금방 숨이 차고 무리하면 아예 숨이 막히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입에 넣고 빨아들이는 흡입기를 들고 다녔다. 강력한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회복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오래 달리기를 할 때면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힘들면 중간부터 걸어가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예 안 하면 좋을 텐데. 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매번 무리했고, 그 때문에 헉헉거리며 더욱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한 번은 체육 시간에 무리한 탓에 집에 가는 시간까지 하루종일 숨을 몰아쉰 적도 있었다. 흡입기를 한번 사용하면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오랫동안 달리는 운동을 기피했다. 축구도, 농구도 싫었다. 올림픽을 볼 때에도 사격이나 양궁을 좋아했고, 빙상 경기는 스케이트보다 스키가 좋았다.
체르노브는 끝없이 달린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화면이 강제로 스크롤되기 때문이다. 밀려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슈퍼 파워를 지닌 주인공이지만 그는 억지로 쉼 없이 달려야만 한다. 잔인한 게임이었다. 차라리 아무 조작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달리는 동작을 하게 만들었더라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 텐데. 천식을 가진 아이가 이 게임을 보며 플레이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체력장을 마친 어느 날,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나는 결심했다. 문득 그동안 미뤄 둔 게임, 체르노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에 친구들도 없이 혼자 오락실을 향했다. 체르노브를, 그 주인공을 끝없이 달리는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나는 비장하게 100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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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아토믹러너 체르노브. AC. 데이터이스트
겉모습은 SF 히어로나 로봇 같은 느낌이었는데 자사의 게임인 카르노브의 사촌이라는 이상한 발표를 한 아케이드 런앤건 장르의 게임입니다. 특이한 것은 버튼의 구성이 공격과 점프 이외에 방향 전환을 넣었다는 점. 또 하나의 특징은 런앤건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롤이 강제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덕분에 높은 난도로도 유명했었지요.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시선에서는 자기 몸통만 한 두께의 레이저를 쏘며 높은 점프를 하고 지치지 않게 달려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훗날 밝혀진 설정으로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힘을 얻은 인간이라는 할 말 없는 내용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