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나기 싫어 도망갔던 드라마를 다시 보며 배운 것

byLayla Lee


몇 달 전 아파트 헬스장에서 채널을 돌리다가 제목만으로 나를 사로잡은 드라마가 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심오한 철학적 담론같이 느껴지겠지만 나한테는 킥킥대며 공감하게 만든 제목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최대한 쓸모 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아 인간 그냥 다 후성 유전자 '덩어리'들이라고 느끼며 사는,

나의 급소를 찔린 느낌이랄까.


누구나 겉으로는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 나는 모두의 내면에 있는 크랭을 떠올린다.

사실 그 사람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자신을 움직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은 아얘 모른 채, 그게 본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어떤 사람은 그 힘을 열심히 따라가고 어떤 사람은 외면하거나 거스르며 살아간다.

결국 사람마다 다른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뿐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내 기대와 달리 2화 이상을 보지 못했다.

주인공 황동만이 자신의 무가치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미친 듯이 변명하는 진상이라서.

크랭이 시키는 대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사람 같달까.

나는 황동만 같은 사람을 이해해 주는 쪽이라기보다는,

극 중 최필름 대표처럼 직설적으로 따박따박 지적하는 정도의 사람일 것이다.

황동만을 감싸주는 인정 많은 캐릭터들과,

황동만을 욕하면 속물처럼 느껴지는 극 중 분위기를 보며,

작가에게 더 이상 혼나기 싫어

여느 드라마들처럼(이입안되면 즉각 하차하는 타입) 한두 회 보다 말았다.


그렇게 지나고 나서 최근,

작법바카라을 봐도 대사 쓰는데 내가 필요한 부분들이 잘 안익혀져서 케이스 스터디가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게 이 드라마였다.

기능적인 대사 말고 나한테 꽂혔던 관념들을 어떻게 대사에 넣는지 그 작동원리를 배우고 싶었다.

명대사로 유명해 대본집이 출판되어 있길래

일단 대본부터 보다가 드라마랑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 톤이 내가 쓰는 대본들이랑은 다르지만

특정 몇몇 대사나 가만히 있다가 딱 듣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초반부에는 와 큰 플롯 없이 인물만으로 이렇게 대사를 전개할 수 있다는 걸,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면서 봤다.

생각 없이 드라마를 소비할 때는 ‘캐릭터에 이입이 안 된다’에서 그쳤었는데,

이제 내 취향 아닌 드라마나 영화도 끝까지 볼 수 있을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플롯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또 다른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작법보다 더 개인적인 것이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대중드라마에서 다룰 수 있지?’


아주 사적인 감정이었다.

누구에게 굳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사건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작고, 사사로워서 있는지도 몰랐던 내 안의 감정.

그런데 드라마 속 인물들이 그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사건과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정의 모양이 닮아 있었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부모나 자식이 죽는 장면에서도 울지 않을 수 있다.(그닥 어려운 일은 아닌가?) 이 드라마에서 누가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특별히 큰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6회 쯤 남주와 여주한테만 생긴 동일한 특정 감정의 존재를

둘이 시착용중인 감정 왓치 회사 직원으로부터 듣는다.

그리곤 둘이 우연히 만나 돌아가는 길에 조금 떨어져서 걷다가 여주가 뒤돌아 가서 안는 장면에서 주르륵(아.. 우는 거 싫은데) 눈물이 났다.

감정 왓치 사용자 4천 명 중에 그 둘만 정확히 같은 감정을 느껴서 동일한 센서가 작동했다.

그게 '도와달라'는 감정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최근에 이 감정을 떠올렸고,

나는 이것 자체를 잘 생각 못하는데

'아 이걸 좀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라는 생각을 문득 한 적이 있었다.

작가와의 이 동시성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부터 이 드라마에 미친 듯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도와달라는 말을 가족한테도 안한다.

내 필요를 상대에게 내놓는 것 자체가 불편한 것.

그냥 혼자 하고 얘기 안 하고 마무리짓는 게 혼자 자란 나에게는 익숙했다.

그런데 말안해도 도와주는 사람도 있더라. 난 또 이게 놀랍고.


그러고 나서 7화인가 8화 시작에서 ‘도와달라’는 말과 관련된 남자주인공의 대사 장면에서 알게 됐다. 사람을 울리는 데 큰 사건이 필요한 게 아니구나.

오히려 아주 작고 개인적인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포착해서 장면으로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부터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드라마 중반부부터는 진짜로 이 드라마 자체가 재미있어졌다.

왜냐면 러브라인이 시작돼서가 아니라-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이 시작되자

여자주인공이 황동만을 좋아하는 이유를 세 명이나 직접 대사로 의아해한다.

황동만이 이뤄놓은 것도 없고 성격도 스타일도 변은아랑 다르니까.

근데 둘이 시험 대상자로 착용하고 있는 '감정' 왓치가 그 모든 답을 말해준다.

성격이나 조건(이건 남들 '눈'에 보이는 거니 이게 다르니 여주인공의 동료, 생모가 여자주인공이 황동만 좋다는 걸 이해 못 하는 것도 당연하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인데 같은 감정의 주파수(보이지 않는 감정의 존재를 왓치가 시각화해줌)를 가지고 있다. 둘이 같은 사건을 겪은 것도 아니고, 같은 성격도 아니고, 삶의 조건도 다른데 특정 순간에 같은 감정을 알아보는 것.

그래서 서로가 상대방의 말에서 남들은 못 알아듣는 걸 알아듣는 거고.

변은아와 황동만은 ‘조건이 맞는 사람들’이 아니라 ‘감정의 깊이와 종류가 맞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이상한 커플인데 둘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커플.



그리고 지금 각본을 쓰고 있어서인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

만들어내는 게 일이라는 점에서 계속 몰입이 됐다.

극 중에는 쓰고 싶은데 쓸게 안 나온다며 한탄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더불어 늦기전에, 더 늙기전에 쓰라는 선배의 말도.

나 또한 글을 쓰고싶은데 쓸 수 없었던 과거에 너무나도 이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패턴이 달라졌다.

사람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나는 생각하고, 멈추고, 다른 장면을 떠올리고, 한참 묵혀두었다가 어느 순간 하나가 떠오른다.

그 때 공바카라 펴듯 맥북을 펴서 혹시나 잊어버릴까 봐 쏟아내고 정리한다.

변은아를 만나고나서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 수정고를 완성한 황동만처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나는 이번 가을에 실감하고 있다.

덥거나 추울 때가 실내에서 '안온하게' 바카라 읽기에 좋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가을에 읽고 보는 작품들은 -

머리는 맑고, 감각은 예민하고, 밖은 덜 자극적이고, 안에서는 재료가 쌓이게 해 준다.

그리고 이게 인간을 이해하게 해 준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느껴지는 것’ 사이의 거리가 짧아진 느낌이다.


공부하러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내가 느끼고 있던 아주 사적인 감정까지 발견하고 있다.

더 많이 듣고 봐야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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