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녀’라는 걸 숨겨야 하는 이유

ep22 지옥에서 탈출한 여자

by윤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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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돌싱녀라는 걸 알면 결혼 반대할까봐 그러는 거야?”


누구나 그렇겠지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좀 괜찮아졌다고. 평온을 찾았다고 느낄 때쯤엔. 항상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난도 미션이 내게 주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버텨지지만. 그 순간을 마주할 때는. 항상 낯설고 두렵다.


서도준씨가 내가 돌싱녀라는 걸 숨기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약간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돌싱녀라는 걸 숨기고 결혼한다면. 이건 마치 사기결혼...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고 나의 아찔한 이혼 스토리를 그대로 푸는 것도.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은 반대하고 말고를 떠나서.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나가 돌싱녀라는 걸 미리 말하면 편견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서도준씨는 특유의 다정한 말투로. 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서도준씨 부모님이라도. 저렇게 반듯하고 따뜻하고. 능력까지 있는 아들이. 갑자기 돌싱녀랑 결혼한다고 하면... 하늘이 무너질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근데 처음부터 속이고 해도 되는 걸까? 나중에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30년 넘게 살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숨기고 시작한다고 해도. 언젠가 알게 될 거다. 그럼 난 돌싱녀에... 거짓말까지 한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빛나의 잘못으로 이혼한 것도 아니고. 숨겨놓은 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실제로 같이 산 기간도 짧고... 그 정도는 그냥 묻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서도준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뻔한 위기 속에서 이혼했지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기 위해 이혼했지만. 어떤 변명을 붙여도.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사연을 들어주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혼한 애’라는 타이틀만 남겨두고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졌어도. 슬롯적으로 나를 보는 냉정한 시각은 똑같구나. 라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솔직히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혼을 속이고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릴 것 같아.”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인데. 이렇게 커다란 일을 아무렇지 않게 묻고 갈 수 있을까. 재혼이지만 마치 초혼처럼. 뻔뻔하게 이끌고 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나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돌싱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혼을 반대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 부분은 확실하게 말하고 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는 게 가장 좋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는 찰나에. 서도준씨는 말을 꺼냈다.


“나는 빛나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아는데. 빛나 그 자체로 보여졌으면 좋겠어. 빛나가 결혼해서 그런 일을 당한 건...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이야.”


서도준씨가 나를 깊게 배려한다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서. 가슴 벅차게 고마웠다. 서도준씨는 그냥. 나를 색안경 끼고 보는 게 싫은거다. 그게 누가 됐든. 근데 있는 그대로 평가받는다면. 오빠 부모님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할까. 그것도 물음표였다.


물론 나도 세상의 모든 일은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선한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도 있고. 굳이 밝히지 않으면 더 좋은 진실도 있다. 이걸 평생 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없었다.

“오빠가 나를 많이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건 느껴지는데... 그 마음도 너무 고맙고...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어.”


서도준씨를 만나고 난 이후로... 처음으로 긴 침묵이 흘렀다. 둘 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확실한 건 서도준씨는 굳이 말하지 말자는 의견이었고. 나는... 이걸 숨기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우린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이 됐던. 완벽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선택을 하든 대가가 따르게 될 거라는 걸.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쪽이 뭘까. 지금 당장 무서워서 말 못 하고 나중에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도준씨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다시 말을 꺼냈다.


“지금 당장 말 안 하고 나중에 알게 되면. 솔직하게 말할게. 빛나는 밝히고 싶어 했는데 내가 말하지 말자고 했다고.”


서도준씨는 꽤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 미래에 내가 돌싱녀가 밝혀지게 되는 상황까지 고려해. 자신이 다 바카라임지겠다고 말했다. 든든했다. 이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남자라면. 평생 믿고 가도 되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찝찝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을 거고. 어쩔 수 없이 난 거짓말쟁이의 인생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찔했다. 물론 돌싱녀에 대한 편견과. 좋지 않은 시선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말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그래도 솔직하게 밝히고 시작하고 싶어.”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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