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지옥을 탈출한 여자
“오빠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내겐 서도준씨가 그랬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고. 그 정도의 가벼운 감정이 아니었다.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 그런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기댄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서도준씨는 달랐다.
그는 한결같이 나를 데리러 왔고. 나를 안아줬고. 미처 내가 몰랐던 쓸쓸한 감정까지 보듬어줬다.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 스스로가 선명하게 보였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화가 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의 프로포즈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빠와 데이트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늙어가는 모습을 함께 보고 싶다. 세월과 함께 주름진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이성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난 빛나랑 소소한 일상을 즐기면서 평생 살고 싶어.”
지옥 속에서 살 때는 항상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마치 여름에 비가 안 와서 땅이 메마른 것처럼. 삶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미치도록 행복해보이고 싶었다. 실제로 안 행복하니까.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서도준씨를 만나고 행복해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사라졌다. 우리의 행복한 연애에 대해 떠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 소소한 행복을 누군가가 빼앗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빛나야, 결혼식은 어떻게 하고 싶어? 혹시 부담되면 꼭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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