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대화가 독이 된 인연들

5. 백 통의 메시지보다 한 번의 만남

by이예은


같이 놀까?
Wanna do something fun together?


영국인 컨설턴트 B는 수상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범블과 일치하는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이 존재했고, 외모도 준수했다. 결혼정보회사처럼 등급을 나누어 비교한다면, 분명 나보다 고등급을 받을 상대였다. 그런데, 몇 마디도 나누기도 전에 '우리가 더 가까이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던가 '얼른 만나고 싶어'라는 조급해 보이는 발언에 경계심이 발동했다. '주말에 같이 놀래?'라는 메시지에는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한동안 대화창에 들어가지 않았다. 현실에서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솔직히, 더 흥미로운 대화 상대가 존재하는 탓도 있었다. 이를테면 일본인 은행원인 C. 슈퍼스와이프를 받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서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한국 문화에 친숙했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과 유학 시절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서로의 직업이나 장래 계획에 대해서도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C는 지적이고, 공감 능력도 뛰어났으며, 농담도 곧잘 던졌다. 그런데 조만간 근무처가 바뀔 계획이었기에, 도쿄를 떠날 생각이 없는 나와는 상황이 맞지 않았다. '같이 술 한잔 해요'라는 제안이 달가웠으나, 구체적으로 날짜를 잡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국인 화가 D과의 대화는 데이팅 앱보다는 면접처럼 느껴졌다. '화가라니, 멋지네요.'라는 한 마디에 한없이 스크롤을 내려야 하는 장문의 독백, 혹은 인생 보고서가 도착했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상업 활동에 매진해야 했던 청년기와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현재까지의 일대기. 여기에 나를 향한 무수한 질문도 쏟아냈다. 삶과 예술, 철학에 관한 모처럼의 담화는 즐거웠으나, 시간이 갈수록 잠재적 연인과의 썸보다는 매체와의 인터뷰, 그러니까 업무처럼 다가와 피로감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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