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인 남자 사랑할 수 있을까? (2)

회사에서 만난 빌런들이 하필이면 비만이어서

by이뻔뻔


4.니돈도 내돈, 내돈도 내돈 D


D는 내가 회사에 입사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 역시 고도비만이였고, 먹는 것에 진심을 넘어 완전히 목숨을 거는 사람이었다. 먹는 것 앞에서는 눈빛이 달라졌고, 굉장한 순발력을 발휘했다. 간식비로 한 번에 10만 원 넘게 지출했고, 맛집이라는 소문이 들리면 먼 지방까지 내려가는 건 예사였다. 또 중고나라에서 프리미엄 웃돈까지 얹어가며 희귀 간식도 구매했다.


내가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팀원들과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에 커피를 산다며 직원들을 카페로 데려간 적이 있다. 그곳은 아메리카노 한 잔에 6천 원이 넘는 카페였다. 한 명씩 주문을 이어가는데, D는 자기 음료를 고르더니 자연스럽게 샌드위치와 케이크까지 쓱 얹어서 주문했다. 샌드위치랑 케이크까지 사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내가 사겠다고 데려간 곳에서 이건 따로 결제하세요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아무 말 없이 내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주문한 음료와 간식을 받아 사무실로 돌아가려는데 D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기...지금 자리에 없는 OOO 씨랑 XXX 씨 간식도 사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내 돈인데 왜 본인이 생색을 내는건지에 대한 황당함이 밀려왔지만 난 힘이 없는 신입사원이었고, 잘 지내보려고 커피를 사는 자리였기 때문에 다시 말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D는 간식은 자기가 OOO 씨와 XXX 씨에게 전달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OOO 씨와 XXX 씨에게선 잘 먹었다는 인사 한마디 없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게된 충격적인 진실. D는 그 간식을 본인이 전부 먹어버린 것이다.


내가 입사하자마자 당한 이 갈취는 약과에 불과했다. 하루는 임원분이 우리 부서 직원 10명에게 커피 한잔씩 사 주고 싶다며 개인 카드를 꺼내셨다. 그리고 그 카드는 하필 D의 손에 쥐어졌다. 그것은 마치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통째로 맡긴 꼴이었다. D는 회사 근처에서 가장 비싼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D는 다른 지원 한명에게 지원 사격을 부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다른 직원 한 명과 함께 양손에 거대한 쇼핑백들을 들고 사무실로 입장했다. 쇼핑백의 크기와 개수부터가 이미 커피 10잔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쇼핑백 안을 열어보니 기가 막혔다. 부서원들 간식은 물론이고, D가 개인적으로 챙길 간식까지 잔뜩 들어있었다. 덕분에 다른 직원들도 입호강을 하긴 했지만, 예사롭지 않은 쇼핑백 자태에 놀란 나는 같이 다녀온 직원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아까 디저트 얼마 나왔어요?"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자그마치 20만 원 가깝게 나왔다는 것. 물가가 많이 올라 돈이 돈이 아니라지만 남의 카드로 20만 원을 시원하게 긁어버리는 D의 구매력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이런 일들은 그 뒤로도 종종 목격되었다. 누가 밥이나 커피를 산다고 하면 한 개가 아닌 수 개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경악했는데, 적응이라는 것이 참 무섭더라. 사람 1명이 1잔의 커피만 마시고, 1개의 음식만 주문한다는 나의 상식은 이 회사에서 바사삭 깨지게 되었다. 비상식이 일상이 되는 환경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나의 뇌는 어느새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용인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D는 회사의 법인카드까지 개인 목적으로 슬쩍슬쩍 사용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명백한 횡령을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 비록 소액이긴 했지만 이런 행위가 수개월간 지속되자, 나는 결국 이 사실을 상사에게 보고했다.


사무실 내에서 큰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윗사람들 덕분에 사건은 조용히 수습되었다. 회사는 내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전혀 다른 핑계를 대며 D에게서 법인카드를 회수했다. 당연히 D는 내가 보고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나를 대하는 그녀의 평소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제보자라는 걸 알았다면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도 남았을 사람이니까.


거기다가 D는 매일 남 욕을 지나치게 많이 했다. 전 직원을 돌아가며 씹었다. 하루 종일 남 험담을 뿜어내는 D를 보고 있자니, 예전 알바 시절 나를 괴롭히던 부매니저 C가 떠올랐다. 남 욕을 안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은 정말 그걸 뛰어넘었고 지구의 모든 사람을 욕 할 태세였다. 본인 기분이 나쁘면 온 동네에 티를 다 내며 토라져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러는지 알 길이 없었다.

xxx : "이거 어떻게 해요?"

D :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D : "그걸 알아서 뭐하시게요?"

누가 간단한 질문을 해도 그녀의 답은 늘 날이 서있었다.


5. 나르시시스트 상사 E

D와 그 무리 때문에 적응이 되지 않던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E가 입사했다. E 역시 비만이였다. 입사 초반 회사 분위기에 겉돌던 그녀는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아서 다가오는 그녀와 잘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E는 D보다 훨씬 더 끔찍한 빌런이었으니까.

E는 강약약강의 교과서 그 자체였다. 직급도 아래고 자기보다 어린 D가 워낙 기가 세 보이니 그 앞에서는 입 뻥끗 못 하면서, 착하고 군소리 못 하는 나와 계약직 직원 F는 우습게 보고 쥐잡듯 잡기 시작했다. 선을 넘는 사적인 오지랖과 참견은 기본 옵션이었다. 오죽하면 F와 내가 차라리 대놓고 빌런인 D가 낫다고 말했을까. 겉으로는 착한 척, 괜찮은 사람인척 온갖 위선은 다 떨면서 약자만 골라 괴롭히는 E에 비하면 D는 양반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넘치는 식탐을 주체하지 못했다. 더치페이를 할 거면서 메뉴는 항상 본인이 정했다.

"대리님~~~ 오늘 저녁 돈까스 먹자!"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집에 가려는데 그녀가 던진 한마디. 나는 저녁을 먹고 퇴근할 생각도 없었고, 하필 메뉴가 돈까스일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최소한 "오늘 저녁 먹고 갈래요?"라고 물어보는 게 상식 아닌가? 하지만 직급에 눌려 거절조차 못 하고 끌려갔다. 물론 돈은 더치페이였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식사는 수십만 원도 안 아깝지만, 싫은 사람과의 식사는 공짜로 사줘도 고문이다. 근데 심지어 내 돈 내고 먹는 더치페이라니! 그돈으로 집에 가서 배달시켜 혼자서 먹는 게 100배는 행복했을 것이다.

E는 40대 싱글 여성으로 주말에는 동호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이런 것들로 추론해 보면 외로움을 못 견디는 성향 같은데 왜 굳이 퇴근 후나 주말에 온라인 게임 동료를 억지로 불러내서 쥐락펴락하려는지 도무지 이해 불가였다. 막상 만나면 내 의견은 싹 무시하고 모든 게 본인 위주였다. 게다가 상사와 동료 욕을 어찌나 쏟아내는지, 나를 사람이 아니라 인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게 분명했다. 더 웃긴 건 본인이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억울하다고 욕을 퍼붓는 모습이었다. 희대의 내로남불에 뻔뻔한 이간질과 거짓말,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 믿는 착각까지... 온갖 것에 아는 척하고 지식을 뽐내는 것도 진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내가 살을 뺐을 때는 그러다 몸 망가진다는 둥 요요 온다는 둥 은근히 초를 치고 질투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마운자로를 맞고 살이 빠지기 시작하자 매일같이 자랑을 하고, 아무도 묻지 않은 정보들을 쏟아낸다.

"내가 식단이랑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아? 퇴근하고 매일 2시간씩 운동하고 저녁엔 닭가슴살만 먹잖아. 사진 좀 봐봐, 나 매일 이렇게 먹어! 그래서 지금 몇 kg나 빠졌냐면 말이야~"

아무도 안 물어봤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솔직히 마운자로 주사 빨이 90%면서 오직 본인의 피땀 눈물로 뺀 척 큰 소리로 말하는데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사실 그녀는 주기적으로 다이어트 약을 먹었었다. 그 약으로 인해 살이 고무줄처럼 쪘다 빠졌다를 무한 반복하던 타입이었다. 체중에 따라 인성도 고무줄이었다. 살이 찌면 세상 날카롭고 예민해서 주변을 달달 볶더니, 살이 좀 빠지면 세상 너그러운 척을 했다. 이번에 시작했다는 마운자로는 그동안 먹던 다이어트 한약이랑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찌는 것 없이 급속도로 빠지기만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사무실에서 매일같이 살 빠진 자랑을 늘어놓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속으로 소소하게 빌어봤다.


'요요가 다시 찾아와야 저꼴을 안보지!'


남의 불행을 바라는 악마가 된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평화롭던 내 영혼을 갉아먹었던 그녀의 자랑질에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E는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내 장담하건대 그녀는 영원히 퇴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E라는 매운맛 인간을 겪고 철저한 인간 경계 모드에 돌입했다. 사람과는 함부로 쉽게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현재 E와는 완벽하게 손절하고 심적 평화를 되찾았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비만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견이 단단히 생겨버렸다. 오죽하면 검색창에 고도비만 성격, 비만 성격 같은 단어를 찾아봤을 정도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명백한 선입견이다. 앞서 겪었던 5명의 비만인 사람들은 그저 우연히 살이 찐 몰상식한 벌런들이었을 뿐이다. 비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의 인성을 묶어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수 씨를 바라볼 때 자꾸 그 잔상이 겹쳐 보인다. 그간 쌓여온 편견까지 무릅쓰고 깨부수어가면서, 내가 굳이 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걸까? 내 편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깊은 의문과 망설임이 피어올랐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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