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알바로 데이트비용 벌기

통장은 비어있었고, 데이트 약속은 잡혔다.

by이뻔뻔

“돈이 없으면 연애도, 결혼도 못 한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하곤 한다.


20대의 나는 돈 개념이 별로 없었다. 적게 벌었고, 버는 대로 썼고, 미래를 위해 모아두는 돈도 없었다. 게다가 남들보다 길었던 백수 기간까지 겹치면서, 제대로 된 자산 하나 만들지 못한 채 40대를 맞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부모님 역시 노후를 준비하기에도 빠듯하셔서 내가 기댈 수 있는 여유란 없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젊음도 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친구들은 10~15년 전쯤 결혼을 했다. 다들 3천만 원 남짓한 돈으로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청담동 강강술래의 푸짐한 점심 특선 갈비가 1만 원 정도였고, 가로수길에서 네 명이 피자를 먹고 5만 원쯤 나오면 “여기 좀 비싸다”는 말이 나왔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행복한 물가였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미래가 지금처럼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집도, 결혼도, 데이트도 지금처럼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은 아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둘이서 한 끼 식사에 6~10만 원 정도 나오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둘이 삼겹살을 먹으러 가도 2인분으로는 부족해 1인분을 추가하면 7만 원이 넘는 금액이 찍혀 있는 영수증을 받게 된다. 물가가 너무 올랐다. 또, 나의 외모도 많이 변했다. 새치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이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 잡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겪은 인생의 풍파는 내 표정에도 그대로 흔적을 남겼다.


있었으면 참 든든했을 돈도 없고, 그 부족함을 채워줄 젊음마저 없는 빈털터리 40대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별것 아니었던 일들이 이제는 하나같이 최상 난이도의 숙제가 되었다. 연애도, 결혼도, 그리고 돈을 모으는 일까지도...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돈을 아껴보려 했지만, 마음먹는다고 곧바로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은 아니었다. 올해는 연초부터 이사비용, 가전 가구 교체 비용 등으로 1,000만 원 정도를 할부로 시원하게 긁게 되었다. 그 여파로 매달 쪼들리고 있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달에는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사람 만나는 일부터 줄이기 시작했고, 사람을 덜 만나다 보니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갔다.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연애가, 지금은 작고 소중한 월급이 받을 타격부터 생각한다. 어찌 될지도 모르는 관계에서는 지출이 더 부담스럽다.


그러던 중, 민수 씨를 만나게 됐다.


다음 만남에는 내가 밥을 사기로 약속했는데, 0에 가까운 통장 잔고를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마침 다행히도 이번 주말에 민수 씨에게 개인 약속이 생겨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비어버린 주말,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에도 주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일요일마다 2시간씩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빠른 손재주를 요구하는 바람에 몸이 따라가지 못해 3주 만에 그만두었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2시간씩만 나를 고용했기에 3주간 일하고 받은 급여는 총 81,000원이었다. 속도가 버거웠던 이유도 있지만, 한 달 내내 일해도 10만 원 정도 버는 셈이라 그만둔 이유도 컸다. 그 뒤로 당근을 통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물색하고 지원도 해보았지만, 40대라는 나이 때문인지 서류에서부터 잇따라 탈락했다. 일을 하고 싶으면서도 막상 시작하면 매주 주말을 반납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려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였다. 쿠팡은 내가 원하는 날 하루만 선택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걸까?'

‘과연 내가 쿠팡 물류센터 일을 할 수 있을까?’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도 들었고, 혹시 다쳐서 병원비가 더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후기를 몇 개 읽어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다. 망설임도 잠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당근에서 지원 버튼을 눌렀다. 서류 탈락만 맛보던 나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쿠팡에서는 단번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출근 전날, 집에서 온라인 교육 영상을 틀어놓고 간단한 시험까지 통과했다. 비록 최저 시급이었지만, 민수 씨와 식사 한 끼 할 수 있는 금액은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비어 있는 주말. 돈도 벌고 새로운 도전도 해볼 겸 그렇게 쿠팡 아르바이트에 첫발을 내디뎠다.


토요일 아침, 평소라면 기약 없이 늦잠을 잤겠지만, 그날은 맞춰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5시간 근무에 지원했다. 일하는 도중에 별도의 식사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나처럼 아르바이트하러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20대에서 50대 이상까지 남녀노소 연령대가 다양했다.



담당 관계자는 두 명뿐인데 여기저기서 질문이 끊이지 않고 쏟아졌다. 나 역시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었지만 눈치를 살피다 간신히 물어볼 수 있었다. 출석 체크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조금 더 일찍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뭐든 첫날이 가장 어렵다. 다행히 관계자 한 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출석 체크를 마치고 물류센터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물류센터 내부는 엄청나게 컸고 구조 또한 얽히고설켜 미로 같았다.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출입구 근처에 서 있던 직원에게 물으니 일할 장소까지 직접 데려다주었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도착했다. 그곳은 물류 센터 내부의 깊숙한 곳이었다. 혼자서는 다시 찾아가지도 못할 것 같은 자리에서 업무가 시작되었다. 내부 담당자분이 오셔서 일을 알려주셨다. 워낙 단순한 일이라며 짧게 설명하고 떠나셨는데, 그곳은 기계소음이 커서 설명이 잘 들리지 않았다.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당장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일단 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알게 되는 법이었다.


내 업무는 물품들이 떨어져 담기는 플라스틱 박스를 레일 위로 올리는 일이었다. 박스에 물건이 차곡차곡 쌓여 가득 차면 센서가 이를 인식해 빨간불이 들어온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박스를 레일 위로 올리면 된다. 하지만 박스가 다 찼는데도 센서가 먹통이라 불이 들어오지 않기도하고, 반대로 텅 비어 있는데도 뜬금없이 빨간불이 번쩍이기도 했다. 물품이 박스로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입구에 끼일 때면 직접 손으로 빼내야 했다. 신호만 믿을 수 없어 눈으로 일일이 박스를 확인하며 하다보니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몸을 훨씬 많이 쓰게 되었다. 박스에 물건이 너무 많이 쌓이면 무거워서 들어 올리기 힘들고 박스 바깥으로 쏟아지기 때문에 물건이 적당히 쌓였을 때 레일에 올려야 했다. 바닥에 놓인 박스를 들어 올릴 때마다 허리를 삐끗할까봐 조심하려고 애썼다. 삐끗했다간 번 돈보다 병원비가 더 나갈 테고, 나이 탓에 쉽게 낫지도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크 타임이 되자 물품들이 쉴 새 없이 박스안으로 쏟아져내렸다. 쏟아지는 물량을 쳐내다 보니, 어느새 허리의 안위 따위는 챙길 겨를도 없이 박스를 옮겨 나르고 있었다.


'지금 몇시 정도 됐으려나...'


시계 볼 시간도 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3시가 되었다. 5시간의 업무가 종료되었다. 그날 다행히도 손목이나 허리를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몸을 내던지듯 쏟아부은 대가는 혹독했다. 간신히 걸어 들어간 휴게실 의자에 앉자마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무한정 그 상태로 계속 앉아있고 싶었다. 버티고 버티다 집에는 가야 했기에,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밖으로 내몰았다. 걸어 나왔다기보다는 기어 나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걷고 싶어 하지 않은 다리를 질질 끌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하필 그날따라 지하철 안은 붐비고 소란스러웠다. 간절히 원하던 빈자리는 끝내 나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살면서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력한 노동이었다. 다섯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 덕분인지 허기짐이 몰려왔다. 가짜 배고픔에 길들여진 내게 이런 진짜 배고픔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고픈 배는 뒤로한 채 침대에 기절하듯 대자로 뻗었다. 천장을 보고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온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진짜 고통은 그다음 날부터 찾아왔다. 며칠 동안 온몸의 신경을 사방에서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어떻게든 회복해 보려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입욕까지 해보았지만 몸 깊은 곳에 스며든 욱신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거운 상자를 받쳐 들던 손목과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갔던 것 같다.


“어머, 대리님! 팔뚝에 멍이 왜 이렇게 들었어요?”


월요일에 출근해 자리에 앉아있는데 옆자리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물었다. 멍이 든지도 몰랐던 나는 당황해 거울로 팔뚝 뒤를 비춰보았다. 하얀 피부 위로 누런 멍 자국이 여러 개 자리 잡고 있었고, 미세하게 긁힌 상처들은 이미 딱지가 앉아있었다.


주말에 데이트 비용을 벌려고 쿠팡 물류센터에 다녀왔다고 말할 사이는 아니었기에 멍이 왜 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며칠 뒤, 휴대폰에 입금 알림이 울렸다. 통장에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의 대가가 찍혀 있었다.


쿠팡 로지스 : + 00,000원 (교육비)

쿠팡 로지스 : + 00,000원 (노동비)


합쳐서 대략 5만 6천 원 정도의 돈이었다. 이 액수를 보니 앉아서 일하며 이보다 많은 돈을 주는 회사에 새삼 감사함이 밀려왔다. 그 후 며칠 동안은 돈을 쓸 때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 돈이면 쿠팡에서 한 시간 일해야 버는 돈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돈을 쓰기가 머뭇거려졌다.


10대나 20대 청춘들이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려 주말 알바를 뛴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 마흔이 넘은 여성이 데이트 비용 때문에 쿠팡 물류센터로 알바를 나간 모습은, 남들이 보면 미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통장은 비어있었고 약속은 다가오고 있었다. 삭신이 쑤시는 고통으로 며칠 고생했지만, 새로운 경험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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