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인 남자 사랑할 수 있을까? (1)

비만인 사람들의 성격에 대한 편견과 오해

by이뻔뻔

소개팅남 민수 씨는 185cm라는 훤칠한 키, 호감 가는 외모, 온라인 게임도 좋았다. 누나와 여동생이 있어서인지 여자와의 대화도 잘 통하고 자연스러웠다. 내 성향상 들어오는 소개팅은 일단 다 받고 본다는 주의이기도 하고 내 나이에는 소개팅 자체가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꼭 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딱 하나의 단점이 있었다. 그는 뚱뚱했다. 누가봐도 비만이였다.


그가 비만인 것이 걸리던 이유는 뚱뚱한 외관이 보기 싫어서가 아니다. 40년간의 빅데이터에 기반한 강렬한 선입견 때문이다. 물론 머리로는 안다. 이 넓은 지구 어딘가에는 비만이지만 성격 좋은 사람들이 존재할거라는 것을...하지만 슬프게도 내 인생 반경 안에서 만났던 뚱뚱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제까지 살면서 내가 겪어본 뚱뚱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이상하던데, 민수씨는 괜찮은 사람인걸까?'


내 머릿속에 비만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게 만든 원인 제공자들의 만행들이 떠올랐다.





1. 완벽한 그녀 A


내가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우리 학교에는 모두가 알 정도로 고도 비만인 A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 갔다고 뒤에서 수근거리곤 했다. (참고로 나는 욕에 동참한 적 없다.) A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였다. 먼 타지에서 그녀를 다시 보다니 신기했지만 나와 그녀는 아는 사이가 아니였다. 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였던 적도 없고, 지인도 겹치지 않으며, 심지어 교실도 다른 건물에 있었었다. 나는 그녀의 튀는 외형 때문에 그녀의 존재를 알았을 뿐, 그녀가 나를 알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자퇴를 하였다. 대학 시절에도 나와 다른 과였고 지인도 겹치지 않았지만 허언증이 심하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의사셔. 내 남친은 연세대 법대 다니는데 엄청 잘생겼어. 나는 원래 고려대 붙었는데 그냥 이 학교 온 거야. 이번에 반수해서 다시 연고대 가려고. "


이것보다 황당한 건 나랑은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그녀가 내 뒷담화를 정성스럽게 하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걔 고등학교 때 전신 성형하고, 다이어트해서 겨우 사람 됐어. "


억울했다. 나는 전신 성형은커녕 다이어트도 한 적이 없고 심지어 꾸준히 살이 찌고 있었다. 쌍커풀 수술을 하긴 했지만 원래 쌍커풀이 있었어서 친구들이 왜했냐고까지 했었다. 고등학생 때 나는 그녀와 다른 건물을 사용했고 마주친 적도 거의 없어서 당연히 나를 모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고, 미리 선수를 쳐서 내 욕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말이라도 한 번 해봤으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것이다. 사이가 나쁠만한 일들은 더더욱 없었다.


나중에 내 고등학교 친구(고등학교때 A와 같은 반 반장이었다)에게 A에 대해 물어보게 되었다.


"A 부모님 의사라며?"


"아닌데? 농사지으셔."


"고려대 붙었다던데?"


"아닌데? 그럴만한 성적 전혀 아니였어. "


나는 지방의 한 고등학교를 나왔고 전교생은 550명정도였다. 그중 SKY 합격자는 5명 이내였다. 내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때 그반 반장이였어서 A의 성적, 대학 합격 여부, 부모님의 직업까지 전부 알고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몸과 얼굴을 포토샵으로 깎아내어 인터넷 얼짱 대회에서 수상까지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내 마음속에 뚱뚱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의 튼튼한 주춧돌을 놓아주었다.



2. 남신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우기던 인기녀 B


A의 만행에 분노하며 다른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친구가 지인 B의 이야기를 꺼냈다. B 역시 엄청난 고도 비만이었는데 그녀의 지갑 속에는 항상 연예인 뺨치게 잘생긴 남자들의 사진이 여러 장 꽂혀 있었다고 한다.


"아, 얘네? 다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애들이야. 귀찮아. "



3.명품 사랑과 자기 혐오, 남 험담이 일상 부매니저 C


내 선입견에 쐐기를 박은 건 20대 시절,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백화점 명품 화장품 매장이었다. 그곳은 어찌보면 내 인생 최초의 슬롯생활이자 최악의 슬롯생활이였다. 그 매장의 서열은 분명했다.


엄격한 호랑이 매니저 > 고도 비만 부매니저 C > 직원 1 > 아르바이트생인 나


C는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얼굴상이었지만,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웠다. 나를 쥐잡듯이 잡으며 못되게 굴다가도, 어느 날은 자기가 사용하던 명품 브랜드 화장품이나 옷을 한아름 가져와 안겨주었다. 물론 그 옷들은 본인 몸에 절대 들어가지도 않을 작은 사이즈를 헛된 희망으로 샀다가 실패한 처치 곤란 재고들이었다.


그녀는 늘 카드값에 허덕였다. 차고 다니던 시계는 불가리, 액세서리는 전부 티파니, 가방도 전부 명품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뚱뚱함에 대한 콤플렉스가 극에 달해 있었는데, 입만 열면 나는 뚱뚱하니까로 시작하는 자학을 쏟아냈다.


"내가 왜 못 죽는지 알아? 내 이 무거운 몸뚱이를 감당할 두껍고 튼튼한 밧줄이 없어서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여자 눈 밑 피부색이 여자 자궁 색이랑 똑같대."

"우리 아빠가 예전에 망치로 엄마 머리를 때려서 엄마 정신이 이상해."


친하지도 않는데 굳이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어느날 매니저는 C에게 소개팅을 시켜준 뒤, C의 면전에 대고 이런 돌직구를 날렸다.


"야, 니 소개팅남이 너 뚱뚱해서 싫대."


듣는 내가 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민망스러운 팩폭이었지만 C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그저 멋쩍게 웃어넘겼다. 직급이 높고 기가 센 매니저 앞에게는 철저히 굴복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본사 직원들이 매장에 다녀가기만 하면, 딱히 아무 트러블이 없었음에도 저 미친년들 어쩌구저쩌구하며 뒤에서 욕을 했다. 일상이 남 욕이었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적이였다.


한번은 혼자 온갖 오해를 쌓아두고는, 이미 퇴근해서 집에 간 나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화를 뿜어냈다. 얼마 뒤 본인이 착각했다는 걸 알고는 꼬리를 내리며 사과하긴 했지만면 영문도 모른 채 폭언을 받아낸 내 마음은 갈갈이 찢겨나갔다.


어느 날은 C가 쏘아붙인 말에 서러움이 터져 퇴근 후 백화점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 숨죽여 울었다. 눈 주변이 붉게 변하고 눈물이 멈춰지지 않아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기가 너무나 민망하고 참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내가 나이가 어려 날 선 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눈물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련 덕분에 내가 한층 더 단단해진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어도 형태만 조금씩 다를 뿐 남을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직접 부딪치고 겪어내면서 40의 나는 타인의 비상식에 흔들리지 않는 내성이 생긴 것 같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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