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눈치의 경계
소개팅 장소를 같이 찾아보자고 한 다음 날,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식당 링크 2개와 함께...
그는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소개팅 상대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의 나이는 50세. 성수동 같은 핫플레이스에 나가는 것 자체가 그리 편치만은 않을 나이였다. 본인 말로도 성수동 같은 곳에 가본 지 아주 오래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소개팅이라는 자리 특성상 너무 저렴한 음식을 먹을 수는 없을 텐데, 물가 비싼 성수동에서 그분이 지출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거나 그가 사도 부담이 없을만한 가격대의 식당을 골라 몇 군데 링크를 보냈다. 깔끔한 삼겹살집과 단정한 덮밥집이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요즘 물가에 밖에서 사 먹는 음식 치고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팅 메뉴로는 너무 편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아주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분이 '소개팅이니까 무조건 근사한 곳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거나 메뉴 선택에 부담이 있을까봐 일부러 편안한 밥집 위주로 골라서 먼저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이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분은 '소개팅은 소개팅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첫 만남에는 모름지기 이탈리안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으셨는지, 자기가 찾아보았다며 보내온 링크는 전부 파스타 집이었다. 링크를 하나씩 눌러보니 요즘 살인적인 물가 탓인지 메뉴들의 가격이 꽤나 만만치 않았다.
보통은 남자가 먼저 제안한 장소에 가던 게 익숙했는데, 내 쪽에서 먼저 음식점을 제안한 건 내 소개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대방에게 부담주기 싫은 나름의 배려심이 부린 돌발 행동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의 무게가 이런 사소한 순간마다 불쑥 고개를 들며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분이 보낸 네 가지 후보지 중 가격대가 저렴한 곳으로 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그분은 예약된 캐치테이블 링크를 내게 보냈다.
그가 보낸 캐치테이블 예약 링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참 신식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바일 예약 링크 하나에 신기해하고 있는 걸 보면, 성수동에 가본지 오래되었다는 그보다 내가 더 구닥다리인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아는 세상의 무게로 타인의 사정을 어림짐작하는 버릇이 생겼다. 대기업에 다니며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 해도 쓸 곳이 많을 수 있고,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 나에게 돈을 쓰는 것이 아까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이닉스 고액 연봉자의 지갑 사정까지 헤아리며 눈치를 보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이래서야 앞으로 누군가를 편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걸까.
나이를 먹으며 배려가 늘어난 게 아니라, 쓸데없는 눈치만 늘어난 것은 아닐까.
상대를 생각한답시고 한 행동들이 지나친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슬쩍 화끈거렸다.
문득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소개팅을 했다면 분위기 좋은 곳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을 원했을 것이다. ‘남자가 사겠지’라는 철없는 계산도 있었다. 상대의 지갑 사정이 어떨지, 소개팅 장소가 부담스럽지는 않을지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상대의 마음보다 내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가 중요했고, 지금의 나는 상대가 느낄 부담부터 걱정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말하지 않은 타인의 사정까지 미리 헤아리게 되는 일인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