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둘 있는 아빠 체형의 소개팅남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추천 친구에 뜬 남자는 그 소개팅남이 맞았다. 사진이 오간 그날 저녁, 그에게서 카지노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미에게 소개팅 제안을 받은 지 정확히 하루 만에 온 연락이었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지 않으셨을지 모르겠네요.
제 이름은 최민수이고, 지인분께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어휴, 뭔가 되게 어색하네요.
아직 퇴근 전이실 것 같으니 편하신 시간에 연락해 주세요. "
남자들의 소개팅 첫 연락은 ‘안녕하세요, 누구 소개로 연락드린 누구입니다’ 정도로 간결한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민수 씨의 카지노톡은 소개팅의 첫 인사치고는 꽤 길고 정성스러웠다. 행간에서 묻어나는 조심성과 특유의 어색해하는 기색에 나도 모르게 미소지어졌다.
나도 그처럼 정중하게 인사를 건냈다. 평소 비즈니스용으로 사용하는 모바일 명함도 함께 건넸다. 내 온라인 게임은 하이닉스처럼 내세울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명함을 먼저 건넨 건 상대가 나에 대해 의구심이나 불투명함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건너 건너의 소개팅이라 서로의 정보가 협소한 부분이 있어서 정확한 정보를 건내고 싶었다.
최민수.
대기업. 그것도 요즘 가장 뜨겁다는 하이닉스에 재직 중인 남자.
고액 연봉자.
비록 30대 때의 사진이긴 하지만 이목구미 또렷한 외모.
여성들이 선호하는 큰 키.
조건만 놓고 본다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는 조건들 앞에서, 오히려 내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의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의 15년 전 증명사진에서 풍기던 서늘하고 세한 눈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동호회라는 루트 때문이었을까.
내 친구 정미는 그를 아예 모른다. 상대방 주선자, 정미의 지인이라는 사람은 민수씨를 동호회에서 스치듯 만나 알게 된 사이라고 했다.
동호회. 어찌보면 그곳이야말로 본인의 진짜 신분을 속이고 활동하기에 딱 좋은 무대가 아닌가.
‘혹시 유부남은 아닐까?’
‘직업을 속인 건 아닐까?’
이런 황당한 의심들이 문득 뇌리를 스쳤던 건 내 주변에 그런 현실 잔혹극의 피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이며 결혼 유무를 까맣게 속인 유부남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서 연애했던 이들이 있었다. 뒤늦게 그 모든 것이 가짜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흘린 눈물은 피와 다름없었다. 그런 일들은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나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드라마보다 더 잔인하고 황당한 일들이 실제 삶에서도 버젓이 펼쳐지곤 했었다. 유부남은 아니겠지싶은 의심은 내 나이가 만들어낸 서글픈 부작용이었다. 의심 없이 다 믿고, 순진하게 웃던 시절은 온데간데 없었다. 40년간 겪어낸 수많은 인간사의 축축한 이면이 나의 의심을 긁어낸 것이었다.
문득 예전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내 나이 서른 쯤이었나. 그때도 지인의 지인이 동호회 멤버를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그의 직업은 감정평가사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그의 직업을 의심하지도, 혹시 유부남은 아닐까 하는 불안에 떨지도 않았었다.
똑같은 루트로 소개받은 사람인데, 왜 이번에는 의심스러운 걸까...
배가 볼록 나오고 살이 쪄서, 어딘지 모르게 전형적인 유부남의 느낌이 나던 사진 속 모습 때문이었을까.
카지노톡 속 그의 최근 사진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앞에서 브이를 그리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시선은 활짝 웃는 얼굴이 아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그의 배였다. 아이 둘을 양팔에 번쩍 들쳐 안아도 끄떡없을 것 같은 커다란 풍채였고, 그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받쳐줄 것만 같은 둥글고 높은 배였다. 뚱뚱함과 비만 그 모호한 경계 어디쯤에 걸쳐져 있는 거구의 몸집은, 유부남일지도 모른다는 내 불길한 추측을 괜스레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거기에 젊은 시절의 증명사진을 보면 외모도 준수한 편이었다. 키도 크고, 성격도 무난하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은 무려 하이닉스.
‘그런데 왜 아직까지 혼자일까.’
그 사소한 의문은 꼬리를 물고 늘어져 이내 불길한 의심으로 진화했던 것이다.
‘혼자가 맞기는 한 걸까?’
첫인사를 나눈 후,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첫 만남의 장소를 정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을 조심스럽게 알려드리자 민수 씨는 내가 이동하기 편하도록 만날 만한 지역 후보를 다섯 군데나 제안해 왔다. 나는 동선이 가장 익숙한, 그리고 내가 사는 곳과 비교적 가까운 성수동이 편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약속 장소는 성수동으로 정해졌다.
"제가 그 근처에 괜찮은 음식점이 있는지 한번 찾아볼게요."
민수 씨의 말에 나도 짧은 답장을 보냈다.
"네, 저도 같이 찾아볼게요."
예전의 나였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그에게 장소 선택을 맡겼을 것이다. 소개팅 장소 정도는 남자가 알아서 정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민수 씨는 곧 쉰을 앞둔 사람이었다.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모든 준비를 당연하게 떠넘기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끌기보다 함께 장소를 찾아보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소개팅 장소 정하는 것으로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대접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