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비 오듯 흘리다

체질인가, 당황인가

by이뻔뻔

그가 걸어 나온 순간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손님은 나뿐이었고, 안쪽 문을 열고 걸어 나온 사람도 그가 유일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편이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찰나의 눈 맞춤이 있은 후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나란히 카운터 앞에 섰다. 그가 내게 어떤 커피를 마실 거냐고 물었다. 30분 뒤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이동해 식사를 해야 했기에 깔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그나마 무난할 것 같았다. 내가 메뉴를 고르자마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카드를 꺼내 키오스크에 꽂았다.


주문을 마친 우리는 그가 나왔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테이블로 갔다. 그곳에는 그가 이미 주문해서 마시고 있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한 잔 놓여있었다.


처음 카운터에서 인사를 나눌 때는 눈길이 잠깐 스쳤을 뿐이었고, 메뉴를 고르는 동안에는 서로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시선을 피할 곳이 없었다. 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사진으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는 생각보다 체구가 훨씬 컸다. 나이에 걸맞은 살집도 제법 있었고, 셔츠 위로 묵직하게 드러나는 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내게 그의 외모를 낱낱이 뜯어보고 품평할 겨를 따윈 없었다. 이 밀폐된 공간을 가득 짓누르고 있는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를 어떻게든 풀어내는 일이 훨씬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그였지만 나보다 훨씬 더 이 자리를 불편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컵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대화를 시작하려고 눈을 마주 봤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땀을 비 오듯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계절은 완연한 봄이었다. 밖은 덥지 않았고, 카페 안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까지 쾌적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과 이마에 투명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굵어지며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 땀이…… 나네요."


그가 말했다. 당황한 나머지 무심코 튀어나온 말인 듯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는 더듬더듬 바지 주머니에서 네모반듯하게 곱게 접어 둔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얼굴을 타고 흐르는 축축한 흔적들을 정신없이 꾹꾹 눌러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 곳곳에서 멈추지 않고 떨어지는 땀방울이 자꾸만 내 시야에 걸렸다. 그가 당황스러울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걸었다. 내가 그의 땀을 의식한다고 느껴지면 그의 민망함과 당혹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자를 만난 지 너무 오래돼서 이러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긴장했나?'

'혹시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


땀이 날 만한 온도가 전혀 아니었기에, 내 머릿속에는 실시간으로 이런저런 추측들이 스쳤다. 이 상황은 나에게도, 그리고 땀을 흘리는 그에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임이 분명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에게 손수건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문득 예전의 기억 하나가 스치듯 지나갔다. 만원 버스 안에서 갑자기 물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휴지가 없어서 손등으로 콧물을 쓰윽 닦아냈었다. 혼자서 괜히 부끄럽고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그가 손수건을 챙겨 온 것이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수건을 지니고 다니는 걸 보면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일 수도 있겠지만, 내 직감은 다른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긴장해서 흘리는 땀 같았다. 그 순간 나에게는 어떤 의무감이 밀려왔다. 오십 세의 거구의 남자를 긴장 속에서 구출해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 톤을 한 옥타브 높이고, 그가 편하게 대답할 수 있는 가벼운 질문들을 던지며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정미한테 들었어요. 아주 좋은 회사에 다니신다고요."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하하, 네…… 요즘 저희 회사가 주식 시장에서도 그렇고 좀 핫하긴 하죠. 덕분에 일은 많지만요."


잘 나가는 그의 회사, 하이닉스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내어 슬쩍 치켜세우며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잔뜩 굳어 있던 그의 커다란 어깨가 눈에 띄게 느슨해지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자신 있는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도 조금씩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가지 가벼운 대화들이 오가고 공간의 공기가 한결 편안해졌을 때, 그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혹시…… MBTI가 E(외향형) 세요? "


뜻밖의 질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나는 지독한 I(극내향형)다. 사람 만나는 것보다 혼자 에너지 충전을 좋아한다. 한없이 조용한 내가 눈앞의 이 남자가 흘리는 땀방울과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화를 이어간 결과 나는 외향적인 사람으로의 오인받았다.


어느새 그의 이마에 비 오듯 흐르던 땀도 한결 잦아들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30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에는 커피는 온데간데없고 투명한 얼음들만 남아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예약한 식당으로 이동할까요?"


서로를 향해 있던 팽팽한 긴장이 조금씩 완만하게 풀어질 때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카페 밖으로 나왔다. 걸음은 처음 눈을 마주쳤던 순간보다 아주 조금은 가벼워져 있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