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된 시대

13 2부. 무엇이 디자인을 죽였는가

by이규현

12장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된 시대


디자인이 아닌 것을 찾아라

나는 수업에서 이상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디자인이 아닌 것을 찾아보세요."

처음에 학생들은 쉽게 답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자 조용해졌다. 누군가 말했다. "자연이요." 다른 학생이 받았다. "자연도 이제 디자인합니다. 조경 디자인, 생태 디자인, 유전자 디자인." 누군가 말했다. "감정이요." 또 다른 사람이 받았다. "감성 디자인이 있잖아요. 경험 디자인도요." 누군가 말했다. "죽음이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장례 디자인이 있습니다. 엔딩 플래너라는 직업도 있고요."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웃음 뒤에 불편함이 남았다. 게임은 승자 없이 끝났다. 디자인이 아닌 것을 아무도 찾지 못했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디자인의 승리인가, 아니면 단어의 사망 선고인가. 모든 것을 가리키는 단어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못한다. 1장에서 던진 그 명제가, 증명된 셈이었다.


개념의 팽창

언어는 권력이다.

어떤 단어가 더 많은 것을 포괄할수록, 그 단어를 소유한 집단의 영향력은 커진다. 디자인이 확장될수록 디자이너의 영역은 넓어졌고, 디자인 예산은 커졌고, 디자인 학과는 늘었다.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으로, 경험을 만드는 것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조직을 바꾸는 것에서 슬롯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 바카라의 전반부가 추적한 그 확장의 역사다.

이 확장에는 패턴이 있었다. 디자인이 새로운 영역에 진입할 때마다, 반드시 앞에 수식어가 붙었다. 산업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까지는 대상의 이름이었다. UX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은 층위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식어가 이상해졌다. 소셜 디자인, 트랜지션 디자인, 메타 디자인,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수식어가 추상화될수록 그 디자인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불투명해졌다. 학회 발표 제목으로는 완벽하지만, 부모님께 설명할 수는 없는 직업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규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디자이너이자 창업가. 브랜드를 만들고 가르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창조성과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115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2화11장 성공한 디자인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