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라다크에 도착했다

[3부. 멀리 와서야 보이는 것들]

byJEN

라다크에 온 김에 곰파(Gompa)는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곰파는 티베트 불교의 사원이나 수도원을 뜻한다. 승려들이 머물며 수행하고 기도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마을 위 언덕이나 산등성이에 자리한 곰파를 자주 볼 수 있다.


인도라고 하면 힌두교를 먼저 떠올렸던 내게, 히말라야 산맥에 둘러싸인 레의 풍경은 조금 의외였다. 이곳에는 티베트 불교 문화가 아주 짙게 남아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그 사원 안에는 또 어떤 풍경과 고요가 있을지 궁금했다.

라다크의 산세를 따라 외곽으로 달리니, 멀리 언덕 위에 곰파가 보였다. 네모난 건물들이 가파른 비탈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치 레고 블록을 쌓아 올린 것처럼, 아래쪽 건물의 지붕 위로 또 다른 건물이 올라앉아 있었다. 흡사 판타지 게임 속 산 위의 요새 같았다.

곰파가 가까워질 수록 길은 조금씩 험해졌다. 포장된 도로는 비포장 도로로 바뀌었고 곧게 뻗은 길은 산을 감아 도는 꼬불꼬불한 길로 이어졌다. 차는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절벽 위 곰파를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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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했다. 레에서 며칠간 고도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여전히 숨이 찼다.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의 밝은 빛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어두운 실내에는 오래된 벽화와 불상이 있었고, 공기에는 향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동굴처럼 어두운 공간 안에서는 스님들이 모여 경전을 외고 있었다.


어두운 공간 안에 앉아 경전을 외는 스님들은 모두 조용하고 절제된 모습이었다. 나이 든 스님부터 아직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어린 승려까지 한자리에 앉아 있었고, 낮고 일정한 목소리가 공간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과 소리가 무척 경건했지만, 이상하게도 차갑지는 않았다. 내가 들어가도 될지 망설이고 서 있자 한 스님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조용히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 짧은 미소와 손짓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순간 영화 속 한 장면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싶었지만 그 앞에서 셔터를 누르는 건 왠지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스님들의 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고, 조용히 앉아 한참 동안 경전 외는 소리를 들었다. 그 자리를 오래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성지 순례를 위해 이곳에 온 것도, 신을 만나러 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홀리가 그렇게 갑자기 떠난 뒤에는 정말 신이 있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 싶었다. 이 모든 일이 정말 어떤 뜻이 있어서 벌어진 건지, 아니면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중에라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지.....


그런데 막상 그 공간 안에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도 질문이 줄어들었다. 오래 쌓인 시간과 사람들의 기도가 남아 있는 듯한 그 고요 속에서, 잠시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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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밖으로 나오자 외벽을 따라 마니차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천천히 걸으며 하나씩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다. 마니차는 불교의 진언을 적은 두루마리를 넣어 만든 원통형 기도 도구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것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일을, 통 안에 담긴 진언을 읊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행위로 여긴다. 손으로 원통을 돌리는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기도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마니차를 하나씩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지막하게 읖었다.


홀리가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평온하게 지내기를.

그리고 나도 이 모든 시간을 잘 지나갈 수 있기를.


처음에는 아주 분명한 소원이 있었다. 하나를 돌릴 때마다 같은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했다. 마니차는 손잡이를 잡아 돌릴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언덕 위라 그런지 바람은 날카로웠고, 손은 점점 시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도 차기 시작했다.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되뇌던 문장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손으로 마니차를 밀고, 한 걸음 옮기고, 숨을 쉬고.

다시 마니차를 밀고, 또 한 걸음.

마음속에는 더 이상 긴 문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손.

발.

숨.

바람.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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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차를 따라 사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홀리를 위한 소원도, 내 슬픔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려고 애쓴 것도 아닌데, 숨과 손과 발에 집중하는 동안 몸이 나를 오롯이 지금 이곳으로 데려온 것 같았다.


비로소 나는 라다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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