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멀리 와서야 보이는 것들]
일주일 전만 해도 배낭에 무엇을 넣을지가 그렇게 중요했다. 라다크는 얼마나 추울지, 옷은 몇 벌을 가져갈지, 침낭은 챙길지, 카메라는 어떤 것을 챙길지, 고산병 약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그런데 막상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어떻게 짐을 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필요한 것들을 배낭에 넣기는 했을 텐데,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놓았는지도 흐릿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챙겼다. 홀리의 유품이었다.
홀리는 함께 갈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홀리를 두고 갈 수도 없었다. 나는 휴대폰 케이스에 작은 고리를 만들어 홀리의 목줄을 걸었다. 그리고 홀리의 이름이 새겨진 은색 플레이트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공항으로 가는 길,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라다크로 향하는 여정은 길고도 길었다. 발리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 인도 델리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 비행기로 라다크에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발리에서 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홀리와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산악인 님스다이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았다. 화면 속 그는 거대한 산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존재감만큼은 산보다 크게 느껴졌다.
평소 내가 특별히 관심 있게 보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쓰였다. 아마 홀리와 비슷한 시기에 떠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울어 퉁퉁 부은 얼굴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그렇게 처음으로 인도에 발을 디뎠다.
델리 공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항의 상징인 ‘무드라’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앞에서 사진을 찍고, 류시화 시인의 문장을 곁들이고,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를 배경음악으로 깔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을 상상하며 혼자 신이 나 있었다.
막상 그 앞에 서니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그래도 사진을 찍었다. 생각해두었던 문장을 적고, 음악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나의 인도 입성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다
슬프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까지 모두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인도까지 온 것이기도 했다. 홀리를 잃은 슬픔을 안고 왔지만, 그렇다고 이번 여행까지 슬픔에게 전부 내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에, 내가 하고 있는 여행에 충실해보고 싶었다.
다음 날 새벽 라다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델리 공항에서 밤을 지새웠다.
라다크는 해발고도가 높아 고산병이 올 수 있다는 후기를 수도 없이 읽었다. 육로로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단숨에 올라가기 때문에 도착 후 컨디션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봤다. 그런데 내 컨디션은 이미 엉망이었다.
며칠째 제대로 자지 못했고, 너무 많이 울어 코가 막히고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혹시 몰라 델리 공항에서 구입한 고산병 약을 반 알 먹었다. 울면 왠지 고산병까지 더 심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다짐했다. 이제는 울지 말자.
델리에서 라다크까지는 한 시간 남짓, 생각보다 짧은 비행이었다. 이륙하고 이십 분쯤 지났을까. 기내 안내 방송이 들렸다. 창밖으로 히말라야 산맥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창밖을 내려다봤다.
’너도, 그곳에서 나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있을까?’
눈 덮인 산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슬픈 와중에도 산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몇 시간 전 화면 속에서 보았던 님스다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홀리가 따라왔다. 아무 상관도 없는 두 죽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설산과 님스다이와 홀리가 이상하게 한데 묶여 있었다. 홀리의 이름이 새겨진 은색 플레이트를 만지작거렸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비행기가 히말라야 설산 위를 지나는 동안 나는 계속 그 말을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