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내 모든 세상이 멈췄다]
홀리가 있었는데, 없다. 귓속에서는 홀리가 야옹하는 소리가 자꾸만 환청처럼 들려왔다. 혼자 남은 몰리는 홀리가 없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집 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홀리가 좋아했던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나는 몰리에게도 자꾸 홀리라고 불렀다. 바닥에 놓인 검은 티셔츠나 검은 비닐봉지만 보여도 홀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엉덩이를 두들겨 달라고 냐옹거리며 내 뒤를 졸졸 따랐던 우리 홀리가,
언제나 내 곁에 찰싹 붙어 있었던 나의 고양이 홀리가,
우리 홀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자꾸만 눈물이 나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는데 참 무안하게도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홀리가 고양이별로 가고 난 뒤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나를 데리고 가까운 카페로 갔다. 홀리와 가까웠던 남자친구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홀리는 없지만 그래도 기운을 차려야지 싶었다. 남겨진 몰리라도 잘 돌보려면 내가 밥을 먹어야 했다.
기분이라도 조금 나아지라고 나는 달달한 프렌치토스트를 시켰고, 남자친구는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치즈버거를 시켰다.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렌치토스트를 크게 잘라 입에 우겨 넣었다. 남자친구도 치즈버거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우리는 각자의 음식을 우적우적 씹으며 홀리와 함께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밥을 먹는 내내 울었다.
내 세상이 멈춰도 세상은 계속되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얼마 전 SNS로 안부를 나눴던 그 밴드가 인천의 한 대형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음악들이 울려 퍼졌다.
관객들은 그 어떤 대형 밴드의 공연보다 뜨거워 보였다. 한국이 맞나 싶을 만큼 거침없이 모싱과 하드코어 댄싱, 슬램이 터져 나왔다. 이제 그들에게 홍대의 작은 공연장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한때 작은 공연장에서 얼굴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수많은 관객 앞에 서 있었다.
오랫동안 같은 일을 놓지 않고 이어온 시간이 만들어낸, 어쩌면 그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나는 홀리를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내게 가장 어두운 날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빛나는 날이었다.
그 무렵 또 하나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적인 산악인 님스다이(Nirmal Purja)의 사고 소식이었다. 나는 그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4좌 정복』에서 본 적이 있다. 그는 세계의 8,000미터급 봉우리 열네 곳을 단 6개월 6일 만에 오른 사람이었다. 미지의 곳을 향한 설렘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름다운 영혼의 사내였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글이 소셜미디어에 연달아 올라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주 잠깐, 세상 사람들이 홀리까지 함께 추모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산을 좋아하는 지인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왠지 홀리가 내가 존경하는 산악인의 순수한 영혼을 따라가 버린 느낌이야.
그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좀 위로가 되려나? 너무 멋진 고양이라 탐이 났나 봐!”
말이 안 되는 상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홀리가 혼자 간 게 아니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인도였다. 출국까지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라다크의 날씨를 검색하고, 배낭을 꾸리며 들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준비가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졌다.
홀리가 죽었는데 내가 어떻게 여행을 가지.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을 비우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혼자 남은 몰리가 자꾸 홀리를 찾고 있었다. 내가 홀리를 잃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몰리 역시 자기와 늘 함께 있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몰리를 두고 내가 배낭을 메고 인도로 떠나도 되는 걸까.
항공권이나 숙소가 아까운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온 인도라는 사실조차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번 여행에는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인도에 가지도 않았는데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여행이 시작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