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떠나기로 작정한 순간, 과거가 돌아왔다]
인탄의 연락을 받은 뒤에도 인도로 가고 싶은 마음은 꺼지지 않았다. 이미 지펴진 마음은 바람을 만난 들불처럼 번져갔다. 인탄은 함께 가지 못했지만, 내가 오래 망설이던 인도의 문은 이미 열어놓은 뒤였다. 결국 혼자서라도 가기로 했다. 어차피 혼자 떠나는 일이라면 익숙했다. 여행뿐 아니라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하루를 보내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인탄과 함께하기로 했던 계획은 접어두고, 혼자 갈 여행 계획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그동안 가장 가보고 싶었던 인도 북부로 방향을 틀었다. 히말라야 산맥이 닿아 있는 라다크였다.
그 무렵 우연히 SNS를 뒤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 대형 록페스티벌의 라인업을 보게 되었다. 이름들을 하나씩 훑어보다가 익숙한 밴드 이름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밴드였다. 그런데 이름이 놓인 자리가 조금 낯설었다. 해당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였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름을 다시 보자 그들의 음악을 듣던 시절이 한꺼번에 따라왔다. 나는 당시 하드코어와 펑크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주말이면 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홍대로 향했다. 크라잉넛의 〈말달리자〉가 울려 퍼졌던 클럽 ‘드럭’이었다.
친구들이 god의 계상 오빠를 외치며 하늘색 풍선을 흔들 때, 나는 홍대 클럽에서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좋아했던 하드코어 밴드가 하나 있었다. 음악도 좋았지만, 사실 나는 그 밴드의 보컬을 더 좋아했다. 내게는 거의 우상 같은 사람이었다. 대학생활도 음악도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나는 그런 모습을 꽤 오래 동경했다.
그때만 해도 공연장은 아주 작았다. 몇 번 보러 다니다 보면 밴드 멤버들과 얼굴을 익히고, 공연이 끝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거창하게 ‘팬과 아티스트’라기보다 좋아하는 오빠들의 공연을 보러 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그 거리감이 참 좋았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어린 시절 따라다니던 밴드가, 그 이름 그대로 여전히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가 되어 있었다. 긴 시간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 노래를 하는 동안 나는 꽤 많이 달라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을 떠났고, 다이빙에 빠졌고, 태국에 살았고, 또 그곳을 떠나 발리에 정착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깊이 빠졌다가도 어느 순간 다른 삶으로 건너가곤 했다. 듣는 음악도 달라졌다. 한동안 하드코어 음악을 잊고 살았고, 자연스럽게 한때 나의 우상이었던 그 밴드의 소식도 더는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는 한자리에서 깊어졌고, 나는 여러 장소와 삶을 지나며 달라졌다.
그 긴 시간이 한순간에 보이는 것 같아 묘하게 벅찼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문득 그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어졌다.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고, 뜻밖에도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자꾸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인도에 가려고 요가를 시작했을 뿐인데 스무 살의 미얀마가 돌아왔고, 18년 전 만난 스님에게 편지를 썼다. 오래전 요가 선생님에게는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청춘의 한가운데 있던 사람까지 다시 나타났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모두 우연이었다. 그런데 우연이 자꾸 겹치자 나도 모르게 의미를 붙이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인도여행을 준비하는 일이 단순한 여행 준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나온 삶의 조각들이 하나씩 현재로 돌아오고, 나는 그 조각들을 따라 오래전의 나를 다시 보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뭔가 있을 것 같았다. 내 삶에서 꽤 오래 기억하게 될 일. 어쩌면 한 편의 영화처럼 나중에 몇 번이고 되돌려보게 될 그런 일이.
아직 인도에 가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어떤 일이 저만치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만간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