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13
친구를 사귀기 위해 내가 노력한 적이 있었을까.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거나 슬롯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원해서 친구가 된 경험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나는 늘 수동적인 만남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학급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여러 친구들이 떠올랐다. 첫인상은 밝고 친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고, 같은 작가를 좋아해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생활 패턴이 달라 오래 이어지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나와 공통점이 거의 없던 전학생과도 같은 동네 아랫집에 산다는 이유로 한 학기 동안 함께 어울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고, 그 뒤로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지만 그때의 순간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함께했던 시간과 그때 느꼈던 감정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친구의 형태는 내가 속한 환경에 따라 달라졌다.
학창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멀어지기를 반복했고, 슬롯생활을 할 때는 함께 고생했던 동료가 친구가 되어 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뒤에는 아이들이 가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 대화가 통하는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동안의 경험은 나에게 자산이 되었지만 동시에 자만도 심어주었다. 이제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친구를 찾아내려 하기 시작한 것이다.
슬롯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점점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는 태도에 가까워졌다.
억지로 관계를 만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인연을 지켜보고, 그 인연에서 진심이 느껴질 때만 마음을 열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친구라는 관계를 조금 더 신중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보다는 나와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서로의 삶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가벼운 만남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내 삶에서 친구라는 존재는 늘 특정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억지로 이어가려 하지 않았고 그저 그 순간에 주어진 인연을 받아들이는 정도였다.
거창한 우정에 연연하다 보면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친구를 원하는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상적인 친구는 붙잡지 않아도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 잠시 머물다 떠나더라도 필요한 순간에 의미를 남기는 사람이다.
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맞는 친구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었던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