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15
여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자연스레 다른 여자의 이야기가 피어난다. 특히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대화의 화두는 종종 우리가 아는 누군가에게로 향하곤 한다.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결은 외모나 패션 감각에 대한 가벼운 평가로 뻗어간다. 대중의 시선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오른다는 건 결코 유쾌하거나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쉽다. 스쳐 지나가는 행동 하나를 보고 나름의 이유를 상상한 뒤 내 방식대로 그럴싸한 설명을 덧붙이면 그만이다. 옷차림이 내 취향과 다르면 그 사람의 성향까지 짐작하게 되고, 말투가 조금 낯설면 그가 살아온 궤적마저 함부로 그려보게 된다. 그렇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몸집을 키운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진짜 삶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눈에 띄는 단편적인 몇 장면만으로 한 사람의 스케치를 서둘러 완성해 버린다. 누군가의 행동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 외모와 옷차림, 말투, 직업, 가족관계까지 이야기의 살이 붙는다. 마치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샅샅이 파악해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그 사람을 깊이 알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그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려는 무의식적인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아.' '저 사람은 저런 옷을 입지만, 나는 다르게 입어.' '저 사람은 저렇게 아이를 키우지만, 나는 내 방식이 있어.' 이처럼 타인을 거울삼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한 험담이라기보다 비교를 통해 나의 자리를 확인하는 씁쓸한 자기 위안에 가까울 것이다. 타인을 바라보며 나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 역시 늘 그 이야기의 무리 안에 있었다. 누군가의 행동을 내 잣대로 가늠했고 미처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이면까지 상상으로 채워 넣곤 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는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무심코 걸친 옷을 보고 나라는 사람을 짐작하고 지나치듯 던진 말 한마디로 내 성격을 단정 지을 수도 있겠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는 과연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 같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나의 깊이와 남들의 눈에 비친 나의 표면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그토록 쉽게 평가하는 이유도 결국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내가 본 것은 그 사람의 길고 긴 삶 중 찰나의 한 장면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기어코 거기에 이유를 달고 이야기를 엮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며 내 생각이 맞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은 결코 몇 마디 말로 가볍게 요약되지 않는다. 내 눈에 무심해 보였던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유별나게 느껴졌던 말투 뒤에는 우리가 미처 안아주지 못한 사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누군가를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 때면 가만히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는 과연 그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물론 지금도 여전히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다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을 이루는 무수히 많은 조각 중 아주 작은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으려 애쓴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과 가볍게 '평가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평가하는 것은 찰나의 시선만으로도 너무나 쉽지만, 그 삶의 무게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나 역시 누군가를 내 잣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아차리는 일일 것이다. 나 또한 언제든 누군가의 이야기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