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3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누군가를 만나 대면하고 대화하며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득해 보일 때가 있다.
‘언제 친해지지?’, ‘앞으로 만날 때마다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는 되어야 할 텐데….’ 같은 고민이 앞선다.
우선은 단계별로 행동에 옮겨본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경직된 입꼬리를 올리며 밝게 인사하고, 누구나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날씨나 차림새에 관해 이야기를 건넨다.
가족관계나 과거와 현재의 거주지를 비교해 설명하고, 직업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들을 때는 관심의 표현으로 동공을 최대한 키운다.
아직 연락처도 모른 채 매주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사이지만, 이후에도 다양한 수순을 밟으며 친밀도를 높이려 애쓴다.
이런 숨 가쁜 과정은 어쩌면 산을 오르는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실수 없이 오르기 위해 준비가 필요하고, 코스를 잘 짠 다음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기 때문이다. 오르다 숨이 차면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그저 뒷동산의 아담한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엔 함께 걷고 대화하며 생각을 공유하는 상황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설령 서로의 진심이 백 퍼센트 통하지 않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집중했다. 의견이 달라 언쟁하더라도 마음이 크게 긁히는 법 없이 '그럴 수 있다'며 넘기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문 등산가들이 도전하는 험준한 명산을 오르는 기분이다.
오르다 결국 정상에 도달한 사람, 차마 오르지 못하고 둘레길만 빙빙 도는 사람,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 산 아래에서 준비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정리해 나간다.
정상의 기준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드디어 함께 정상에 올랐다고 뿌듯해했지만, 상대방은 중턱에 멈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잘 오를 수 있게 다독이고 응원을 보냈으나 내 곁으로 더 올라오려 하지는 않았다. 몇 발자국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제자리였다.
그럴 땐 내가 내려가 서로의 높이를 맞춰야 했다.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 정도로 만족하며,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다.
보통은 보편적인 잣대로 관계를 평가하며 서둘러 결론을 내버리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산 아래에서 준비하는 시간, 둘레길에서 숨을 고르듯 천천히 걷는 시간,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 모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각자의 방식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모든 관계가 정상을 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어떤 관계는, 둘레길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