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오랜만에 사진관 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 앞에 섰던 게 언제였는지 아득했다. 몇 년 전, 여권을 만들기 위해 어색하게 앉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그 사이에도 계절은 소리 없이 바뀌었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 나이를 먹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정면의 렌즈를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쑥스러웠다. 셔터가 눌리고 조명이 번쩍이는 불과 몇 초의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내가 지나온 수십 년의 세월이 멈춰 서는 듯했다.
증명사진은 화려한 연출을 요구하지 않는다. 눈부신 풍경도, 과장된 포즈도 없이 그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여행지 사진보다 증명사진 앞에서 더 솔직해진다. 꾸민 모습 뒤로 감출 수 없는 ‘세월의 결’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거울 속 익숙했던 얼굴도 프레임 안에 갇히면 어딘가 낯설어진다. 눈가에 살그머니 들어앉은 잔주름, 입매에 스민 차분함과 고요함. 문득 나는 언제부터 이 시간의 흔적을 숨기고 싶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은 언젠가 지나가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정직하게 흐르는데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젊고 자연스럽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완성된 사진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주한 사진 속에는 단지 나이 든 낯선 얼굴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숨겨야 할 흔적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만들어온 시간의 얼굴이었다.
증명사진은 단순히 얼굴만을 증명하는 표식이 아니었다. 그 순간까지 살아낸 시간을 함께 담아내는 기록이었다.
언젠가 또다시 달라진 내 얼굴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여기까지 무사히 건너온 시간에 대한 고마움을 먼저 떠올릴 수 있기를. 세월은 청춘을 데려가는 대신, 그만큼의 계절을 우리 얼굴 위에 남겨주니까.
그날 사진관을 나오며 나는 새로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살아낸 단단한 세월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