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논다는 말

밥풀을 닦으며 꿈을 품고서

by김온유

로스쿨은 결국 물 건너갔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 육아맘이 되었다.

아이들 크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던 건 사실이다. 뒤집기를 하고, 첫걸음을 떼고, 서툰 발음으로 “엄마” 하고 부를 때마다 마음이 녹았다. 그런데 동시에, 아이가 조금씩 자라는 동안, 나는 어딘가에서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닥에 흘린 밥풀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떼어 내다보면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가만… 나 머리 감은 게 언제더라?’

거울을 볼 새도 없었다. 츄리닝은 입은 지 며칠째인지 기억도 안 났다. 한때는 나름 큰 꿈을 가지고 인생을 건 도전을 이어가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밥풀 떼는 게 오늘의 가장 큰 미션이라니.

하루 종일 동동거렸는데, 막상 저녁이 되면 ‘오늘 나 뭐 했지?’ 싶은 날이 많았다. 분명 쉴 틈 없이 움직였는데, 손에 남는 게 없었다. 월급을 주는 사람도, 오늘 수고했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없는 일. 육아는 그런 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온라인 게임맘들이 은근히 부러웠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뛰어오는 엄마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구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걸어오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멋있어 보이던지. 나는 그 옆에서 아이 콧물을 닦아 주며 서 있었다. 츄리닝 차림으로.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 스칠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니야, 육아도 엄청 중요한 일이야. 이게 얼마나 고된 일인데.’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나름 잘 버티고 있다고, 나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와 마주쳤다. 온라인 게임에 다니는 엄마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지나가듯 이야기 했다.

“○○ 엄마는 좋겠다. 집에서 노니까 낮에도 시간 많고.”
정말 부럽다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었다. 그래서 더 귀에 콕 박혔다.
'집에서… 논다고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대신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쵸, 뭐."
그 엄마는 내 표정을 알아채지 못한 채,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실제로 그 엄마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말에 걸려 넘어진 건 나 혼자였으니까.


집에 오는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 집에서 노는 사람인가?’ 괜히 목이 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 엄마는 회사도 다니고 애도 키우는데, 나는 애만 키우고 있으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쓸쓸해졌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부엌에 섰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정말 노는 건가?’ 싶다가도, ‘그 엄마도 퇴근하면 이 그릇들 다 씻겠지…’ 싶으니 할 말이 없었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서운함에, 그날따라 죄 없는 그릇만 박박 문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온라인 게임맘도 참 힘들었을 거다.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매일 출근했을 거고, 녹초가 된 몸으로 퇴근해서도 쉴 새 없이 육아를 이어 갔을 거다. 그 사람이라고 속 편했을 리 없는데, 그때는 그게 안 보였다. 그저 ‘나가서 뭔가 하는 사람’과 ‘집에만 있는 사람’ 사이에서, 나 혼자 저울질하며 작아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나가서 일할 번듯한 온라인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더 답답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채로, 그 빈자리를 채우지도 못하고 그냥 안고 지냈다.


그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에서 노는 사람은 호사스럽게도 집 근처 요가원에 다녔다. 매트 위에 엎드려 숨을 고르는 그 한 시간이, 유일하게 나 혼자인 시간이었다. 강사님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하는 말에 가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 때가 있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한바탕 크게 심호흡을 하고 몸을 비틀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갈 힘이 생겼다.


하지만 육아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 이렇게 집에만 있을 사람은 아닌데.’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현실은 여전히 츄리닝 차림으로 아이들 밥부터 챙기는 하루하루였다.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모를 서운함과,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꿈들. 그 둘이 한 몸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쪽도 꺼내 놓지 못한 채로, 나는 그냥 매일을 살아 냈다.


지금 그 시절 사진첩을 넘겨 보면, 사진 속 나는 늘 웃고 있다. 아이를 안고, 케이크 앞에서, 놀이터에서. 그 웃음이 거짓은 아니었다. 정말 행복했다. 다만 그 웃음 뒤에 그렇게 복잡한 마음이 함께 있었다는 걸, 사진은 말해 주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뭔가 잘못 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그 마음들을 어디에 풀어 놓아야 할지 아직 몰랐을 뿐이다. 방향을 찾지 못했을 뿐, 나아가야할 길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어쩌면 방향은 이미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밥풀을 떼던 그 손 안에서도, 무언가 해 보고 싶은 마음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으니까.


집에서 노는 엄마는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오늘도 묵묵히 해내는 엄마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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