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오랜 동료이자 친구가 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 밥 한 끼 하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는데, 그날따라 친구의 한숨이 깊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왜 그래, 갑자기. 요즘 무슨 일 있어?“
"애들이 커 가면서 학원비며 생활비며 들어가는 돈은 자꾸 늘어나는데, 아무리 벌이를 늘려 봐도 생활은 늘 제자리야. 요즘은 남편이 주말에 알바까지 시작했어.“
"저금은 하고 있어?" 내가 물었다.
"저금할 여유가 어디 있어." 친구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다 그 웃음 끝에는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친구는 지금까지 '돈이 더 필요하면 내가 더 벌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그저 더 열심히 일할 생각만 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몸은 점점 힘들어지고,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난다고.
"주식 같은 것도 해 보려고 공부는 했었는데..." 친구가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그건 어느 정도 여윳돈 있는 사람들 얘기 같더라구. 나는 벌어서 쓰기도 바쁜데, 투자할 돈이 어디 있나 싶어."
평소같았으면 ‘그랬구나, 같이 힘내자.’ 이러고 말았을텐데... 그런데 그날은 왜였을까. 친구의 젖은 눈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5천 원, 1만 원씩 혼자 지출 줄이기 챌린지를 하며 주식과 비트코인을 조금씩 모아가고 있었다.
"이거 봐 봐. 단돈 천 원으로도 주식 같은거 모으기를 할 수가 있어.“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큰돈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커피값만 아껴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하고있는 주식과 코인을 자동으로 모으는 방법을 하나하나 화면으로 보여 줬다. 친구는 신세계를 만난 얼굴이었다.
“너나 나나 열심히 일하면서 살잖아, 돈도 돈대로 일을 하게 만들어야지.”
내친김에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너 자영업에 프리랜서 일까지 하면서, 세금은 좀 챙기고 있어? 세금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고. 개인연금저축이랑 IRP 계좌 이런거 활용해 봐.“
"아, 그거 들어는 봤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엄두가 안 나서 그냥 흘려들었어.“
대화를 이어 가는데,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엄두가 안 나서 흘려들었다는 말. 아마 그 말을 삼키며 사는 사람이 이 친구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사느라 바빠서, 정보가 없어서, 혹은 그저 낯설고 무서워서 눈 감고 지나쳐 버린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있잖아, 나랑 비슷한 상황의 엄마들이 돈 공부를 하자고 만든 모임이 있거든?. 거기서 수업을 하나 만들어서, 이런 것들을 좀 알려 주면 어떨까?“
순간 망설였다. '이런걸 강의까지 할 게 있으려나.' 그런데 친구의 눈빛은 이미 진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또래 주부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용기 내지 않으면 내 친구와 같은 사람들을 붙잡고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도 같았다.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칠 수 있다면, 일단 시작해 보라'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만든 것이 지금의 티끌머니클래스 경제 스터디 모임이다.
첫 모임 날, 우리는 거창한 걸 하지 않았다. 돈 공부를 왜 하려고 하는지, 또 왜 해야 하는지부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낯선 금융 용어를 하나씩 함께 익혔다. 세액공제가 뭔지, 복리가 뭔지. 다들 어디선가 들어는 봤지만 정확히는 몰랐던 말들을 쉬운 말로 풀어 가며 하나씩 짚어 나갔다.
차차 개인연금저축계좌로 노후를 준비하는 법도 함께 공부했다. 매달 얼마씩 넣으면 세액공제를 얼마나 받는지 계산도 해보고, 실제로 계좌를 여는 것부터 시작했다. 여기에 경제 관련 바카라을 한 권씩 정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서 모임도 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립식으로 매달 조금씩 주식을 사 모으는 방법을 서로에게 알려 줬다. 티끌처럼 작은 돈도 꾸준히 모으면 투자가 된다는 걸, 말이 아니라 각자의 계좌 화면으로 직접 확인해 갔다.
친구가 그날 눈시울을 붉히며 털어놓았던 걱정은, 어쩌면 이 시대 40대, 50대 엄마들과 주부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돈에 대한 불안이 아닐까 싶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늘 제자리인 것 같은 불안, 몸은 나이 들어 가는데 준비는 안 된 것 같은 초조함. 그 불안은 누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은 어느새 5기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지역의 여성가족센터와 함께 미혼모와 한부모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돈 공부, 가계 경영을 위한 경제 공부도 함께하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느끼는 게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절약하는 것까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은 돈으로 쓰는 것 말고는 무엇을 더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열심히 벌고 아껴서 생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옮겨 두어야 하는지 몰라서 불리는 것은 시작조차 못 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연금계좌를 열고, 절약을 자랑삼아 티끌 한 푼 아낀 돈으로 지수 ETF를 사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록 티끌이다. 하지만 30년 뒤 복리가 만들어 낼 힘을 알게 된 우리는,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이런 이야기는 정말 함께 나눌 필요가 있었구나. 그때 용기 내길 참 잘했다.'
옆에서 알려 주는 사람이 꼭 완벽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그 길을 걸어 본 옆집 언니라도, 그 삶을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완벽한 전문가를 기다리다 보면, 그 기다림 자체가 또 하나의 미루기가 되어 버리니까.
초보가 건넨 한마디가, 왕초보인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여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계좌 속 돈은 아직 티끌이다. 그래도 우리는 안다. 티끌도 모이면 태산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태산은 혼자보다 함께 쌓을 때 훨씬 덜 외롭다는 것을. 친구의 한숨에서 시작된 작은 경제 스터디 모임은, 그렇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