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도시락엔 늘 멸치와 김치가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엔 "돈이 부족하다"는 말이 배경음처럼 늘 깔려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우리 집 BGM은 그거였다. 뉴스도 아니고 가요도 아니고, "돈에 발이 달렸나, 다 어디갔노."
엄마는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하신다.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갔는데, 지갑을 열어보니 천 원짜리 한 장이 전부였던 날이 있었다고. 그 돈으로 겨우 콩나물 한 줌을 사 오셨다고 했다. 엄마는 그냥 웃으며 옛날얘기 하듯 꺼내시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시큰거린다. 시장 좌판 앞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만지작거렸을, 지금 내 나이의 엄마 모습이 그려져서다. 그때 엄마도 나만큼 어렸는데, 얼마나 막막했을까.
돈이라는 게 뭔지, 엄마 아빠가 다투는 날엔 이유가 대개 그거였다. 그놈의 돈.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알았다. 저 다툼의 진짜 이름은 '돈'이라는 걸.
그 시절엔 고등학교도 비평준화였다.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고 들어가야 했는데, 나는 1지망으로 가고 싶은 학교가 따로 있었다. 지금은 고등학교가 무상 의무교육이지만, 그때는 학기마다 등록금을 내야 했다. 마침 2지망으로 넣어둔 학교에서 3년 전액 장학금을 제안했고, 나는 가고 싶던 학교를 접고 그쪽으로 진학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그 시절, 내 도시락 반찬엔 늘 빠지지 않는 두 가지가 있었다. 멸치볶음과 김치. 점심시간에 친구들 반찬통을 열어보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떡갈비나 비엔나소시지가 들어있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인스턴트 소시지를 보면 몸에 안좋을거라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먹음직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도 그 점심시간이 다 서럽지만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눈치껏 빠른 젓가락질로 서로의 반찬을 맛보던 그 시간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나눠 먹으면 또 그런대로 재밌었다.
외식은 완전히 남의 이야기였고, 학교에서 신청받는 우유 급식도 나는 웬만하면 신청을 안 했다. 친구들한테는 "나는 생우유는 맛이 없어서" 하고 안먹고 싶다고 말했지만 집에 와서는 "엄마, 나 우유 급식 신청하고 싶은데...신청해주면 안돼?"
그렇게 엄마를 슬쩍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친언니와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한다.
“너는 엄마한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재잘재잘 조르기라도 했지. 나는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야기조차 못 꺼냈어.“
역시, 첫 째는 첫 째다.
학원은 당연히 다닐 형편이 안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는 일,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천진난만하게 놀고 즐길 나이에 나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도, 반장으로서 챙길 학급 일도, 내 미래와 진로도 같이 생각해야 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일까, 좀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 무렵부터 나는 돈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돈이 많으면 좋겠다. 돈이 없으면 엄마 아빠처럼 저렇게 힘든가 보다. 언젠간 나도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돈을 꿈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