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를 읽고
레이 커즈와일의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를 읽었다. 2005년에 출간된 《특이점이 온다》의 후속작으로, 커즈와일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예견해 온 기술적 특이점이 이제 정말 가까워졌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결합하고,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며, 2045년 무렵에는 지금의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지능 폭발이 일어난다는 그의 전망은 여전히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린다. 그의 예측을 지나치게 낙관적인 미래주의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바카라을 읽으며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커즈와일이 미래의 날짜를 얼마나 정확하게 맞혔느냐가 아니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생활양식과 산업을 미리 상상해 내는 능력이었다.
미래를 전망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 낼 세상을 현재의 언어와 생활방식만으로는 제대로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MP3 플레이어와 디지털카메라, 지도, 수첩, 전화기가 각각 별도의 제품이었다. 스마트폰은 이런 기기들을 하나로 합쳤고, 동시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앱’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 냈다.
지금은 하나의 앱이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시간을 대신한다. 앱과 앱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20~30년 전에 이런 세상을 설명했다면 대부분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 앞에는 복사집이 있었다. 교수님의 강의록과 두꺼운 복사물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때 나는 가끔 생각했다.
‘이 많은 종이를 한 기계 안에 넣고 다닐 수만 있어도 공부하기 훨씬 편하겠다.’
지금 학생들은 태블릿 하나에 강의자료와 바카라, 필기와 영상을 모두 담아 다닌다. 내가 한때 대단한 혁신이라고 상상했던 일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커즈와일의 강점은 이런 변화의 방향을 남들보다 멀리 바라본다는 데 있다.
그는 단순한 미래학자가 아니다. 광학문자인식과 음성합성, 전자악기 기술을 실제로 개발한 발명가이자 공학자다. 기술이 실험실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서로 다른 기술이 어느 순간 하나의 제품과 산업으로 결합되는지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상상은 아무런 근거 없는 공상이라기보다, 기술의 축적과 발전 속도에 기반한 공상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이 바카라의 핵심은 ‘수렴’과 ‘창발’이다.
각각의 기술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다. 반도체, 인공지능, 유전체 분석, 나노기술, 로봇공학, 재생에너지 같은 분야는 각자의 속도로 나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 연결된다.
여러 기술이 충분히 성숙한 뒤 한 지점에서 만나면, 개별 기술의 단순한 합으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산업과 생활양식이 등장한다. 이것이 창발이다.
인공지능의 역사도 그랬다.
초기의 신경망은 개별 픽셀이나 단순한 패턴을 인식할 수 있었지만 복잡한 사물을 추상화하기에는 계산 능력과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 층을 쌓아 낮은 단계의 선과 모양에서 더 높은 단계의 특징과 개념으로 올라간다는 발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당시의 컴퓨터로는 이를 현실화하기 어려웠다.
이후 반도체 성능이 높아지고 GPU와 대규모 데이터가 결합하면서 다층 신경망을 실제로 학습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딥러닝의 시대가 열렸다.
어떤 하나의 천재적인 발명이 갑자기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알고리즘과 연산 능력, 데이터와 네트워크가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하다가 한 시점에 수렴한 것이다.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도 결국 이런 수렴이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나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커즈와일의 낙관론을 전부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술 발전의 속도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주장에는 상당히 공감한다.
전문의가 된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었다. 최근 연수강좌 자료를 다시 훑어보다가, 내가 처음 의학을 공부할 때와 비교해 치료의 패러다임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특히 암 치료는 세포독성 항암제를 중심으로 하던 시대에서 표적치료와 면역치료의 시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제는 외부에서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데서 더 나아가, 환자의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치료가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 유전체 분석과 인공지능, mRNA 기술이 결합하면 개인별 암 백신이라는 발상도 가능해진다.
수술로 얻은 암 조직의 돌연변이를 분석하고, 그 환자의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신생항원을 골라낸다. 그런 다음 면역세포가 그 항원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mRNA 백신을 설계하는 것이다.
환자의 암세포가 가진 특징을 찾아내고, 그 특징을 면역계에 일종의 ‘수배 전단’처럼 보여 주는 셈이다.
mRNA 기술은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카탈린 커리코와 드루 와이스먼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변형 뉴클레오사이드를 활용해 불필요한 면역반응을 줄이고 단백질 발현을 높이는 기반을 오랫동안 닦아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축적되어 있던 기술에 막대한 투자와 임상 개발의 속도를 더했다.
2023년 《네이처》에 발표된 췌장암 맞춤형 mRNA 백신 1상 연구도 이러한 기술적 수렴을 보여 준다.
백신을 투여받은 16명 가운데 8명에게서 강한 신생항원 특이적 T세포 반응이 나타났고, 면역반응이 확인된 환자군에서는 재발이 더 늦게 발생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물론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연구다. 암을 정복했다고 말할 단계는 전혀 아니다. 면역반응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곧바로 장기 생존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과 얼마 전까지 상상에 가까웠던 치료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유전체 분석으로 암세포의 돌연변이를 찾고, AI를 이용해 유망한 신생항원을 선별하고, mRNA 플랫폼으로 백신을 제작한 뒤, 환자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도록 만든다.
유전체 기술과 인공지능 분석, 면역치료와 mRNA 플랫폼이 각각 발전하다가 하나의 치료법 안에서 만난 것이다.
커즈와일이 말하는 미래도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하나의 초월적인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여러 기술이 서로 결합하면서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영상
맞춤형 mRNA 암 백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보다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아래 영상을 함께 볼 만하다.
닥터딩요, 〈내 췌장암세포로 만든 맞춤 암백신의 경이로운 결과〉
https://www.youtube.com/watch?v=D7xXILX8vC4&t=1382s
영상은 맞춤형 암 백신의 원리와 췌장암 임상연구를 비교적 쉽게 설명한다. 다만 영상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해설 자료이고, 연구 결과의 직접적인 근거는 2023년 《네이처》에 발표된 초기 임상연구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만 바카라 자체가 아주 잘 쓰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분야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장이 비슷한 구조를 반복한다. 과거에는 상황이 나빴고,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으며, 여러 기술이 수렴하면서 빈곤과 폭력은 줄고 수명과 생산성은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처음에는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만 비슷한 논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중반부터는 다소 지루해졌다.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애고 경제적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비판에도 낙관적으로 답한다.
기술이 기존의 직업을 없애더라도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며,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삶의 질 향상은 국내총생산과 같은 기존 통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라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을 지도와 번역, 음악, 영상통화, 정보검색, 일정관리 같은 서비스를 스마트폰 하나로 이용한다. 자율주행차가 완성된다면 개인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과 비슷한 효용을 훨씬 낮은 비용으로 누릴 수도 있다.
이런 편익은 전통적인 경제지표만으로 모두 측정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MP3 플레이어와 디지털카메라를 비롯한 여러 제품과 산업을 사라지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앱 개발과 플랫폼, 콘텐츠, 배달, 모바일 금융이라는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 냈다.
기술은 일자리를 단순히 줄이기보다 일의 형태를 바꾸어 왔다.
여기까지는 나도 커즈와일에게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가 커즈와일에게 가장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기술의 혜택이 결국 슬롯 전체에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라고 믿는 태도였다.
커즈와일은 기술의 최전선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하고 이용하며, 투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삶에서 기술은 대체로 기회였다.
그러나 기술 변화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 새로운 기술을 배울 시간과 자본이 없는 사람, 플랫폼과 데이터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기술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생산성이 증가하고 슬롯 전체의 부가 커지는 것과, 그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자본과 데이터, 연산 능력과 교육을 가진 개인과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먼저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이 만들어 낸 풍요가 자동으로 모두의 풍요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환기에 뒤처진 사람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소외될 수 있다.
커즈와일은 정부의 역할과 복지 확대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많은 정부가 이미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재정 확대는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 삶의 의미와 슬롯적 지위까지 회복시킬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람에게 일은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다.
자신이 슬롯에 필요하다는 감각과 타인과의 관계, 하루의 질서와 정체성을 제공한다. 기술이 소득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이 모든 문제가 함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 발전이 빠를수록 불평등과 포퓰리즘, 슬롯적 갈등도 함께 커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특이점은 단순한 공학적 사건이 아니다.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느냐의 문제인 동시에, 그 기술을 누가 소유하고 그 혜택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분배할 것인가를 묻는 정치적·윤리적 사건이다.
나는 커즈와일의 낙관론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예측이 모두 실현될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인간이 100세와 200세를 넘어 살고, 인공지능과 완전히 결합하는 2045년의 미래는 내게도 여전히 공상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바카라은 한 번쯤 읽을 가치가 있다.
커즈와일은 우리가 현재의 기술만 바라보며 미래를 지나치게 작게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기술은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기술이 축적되고 연결되며,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스마트폰과 앱 시장이 그랬고, 딥러닝이 그랬으며, 개인 맞춤형 암 백신 역시 같은 과정 위에 있다.
나는 커즈와일이 그리는 유토피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거대한 전환기의 초입에 있다는 판단에는 동의한다.
인공지능과 바이오기술, 로봇공학과 에너지 기술이 수렴하면서 우리가 아직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크다.
다만 기술이 수렴한다고 해서 그 혜택까지 저절로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누구의 삶과 연결할 것인지는 기술 자체가 결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와 정치, 교육과 분배의 문제다. 결국 슬롯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커즈와일이 미래를 상상하는 법을 보여 준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그 미래를 누구를 위한 미래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