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 서로를 오해해온 사이

『인터메초』

by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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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바카라은 샐리 루니의 『인터메초』였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두께가 상당한 소설이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독특한 문체였다.


『인터메초』의 문장은 한 장면을 차분하게 설명한 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인물의 말과 생각, 표정과 몸짓, 주변의 풍경과 과거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한 사람을 한 방향에서 오래 바라보기보다는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비추는 것에 가깝다.

이를테면 드라마에서 카메라의 앵글이 빠르게 바뀌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인물의 얼굴을 비추다가 그가 바라보는 상대의 표정으로 넘어가고, 다시 방 안의 풍경과 머릿속의 기억을 스쳐 지나간다. 현재의 대화 사이에 과거의 장면이 끼어들고, 상대의 말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의 감정이 동시에 펼쳐진다.

시간도 감정도 한 줄로 흐르지 않는다. 여러 장면이 겹쳐지고, 그 겹침 속에서 인물의 심리가 드러난다.

샐리 루니의 문장은 인물을 설명한다기보다 인물의 의식 속에 독자를 집어넣는다.

우리는 실제로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의 말만 듣지 않는다. 표정을 살피고, 말투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에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 함께 있었던 장소, 서운했던 기억과 지금의 감정이 질서 없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인터메초』는 그런 산발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의식의 움직임을 문장으로 옮겨놓는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을 읽는다기보다 장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인물의 마음을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흩어져 있는 말과 시선과 기억이 하나의 화면처럼 이어진다. 그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인물의 감정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물론 이 소설이 끝까지 흥미진진한 바카라은 아니었다.


두꺼운 분량에 비해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엄청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소설도 아니다. 대신 인물의 성격과 관계의 균열, 대화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을 집요할 정도로 오래 따라간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깊이 빠져들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뒤로 갈수록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바카라을 읽으며 샐리 루니가 왜 주목받는 작가인지 알 것 같았다. 특히 형제 사이의 미묘한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큰아들 피터는 변호사다. 잘생겼고, 슬롯성도 좋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인생을 제법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반면 동생 아이번은 어릴 적 체스 천재로 불렸지만, 지금은 체스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다른 일을 병행하며 살아간다. 사람을 대하는 데 어수룩한 면이 있고, 슬롯성도 부족해 보인다.

피터는 그런 아이번을 어딘가 미숙한 사람처럼 바라본다.

자신이 동생보다 세상을 더 잘 알고, 더 성숙하며, 동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번의 선택을 존중하기보다는 평가하고, 이해하기보다는 교정하려 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갈수록 오히려 자신의 삶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피터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피터는 전 여자친구 실비아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동시에 새로운 연인 나오미와의 관계도 이어간다. 그러나 그는 어느 관계에도 온전히 머물지 못한다.

실비아와 함께 있을 때는 나오미를 떠올리고, 나오미와 함께 있을 때는 실비아의 흔적을 찾는다. 두 사람을 모두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결핍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피터에게 사랑은 때때로 상대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상대를 붙드는 일에 가깝다.




반면 아이번은 겉으로는 미숙하고 슬롯성이 부족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사랑 앞에서는 피터보다 훨씬 정직하다.

그는 체스 행사에서 만난 열네 살 연상의 여성 마거릿과 사랑에 빠진다.

피터는 그 관계를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정상적인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식이다. 겉으로는 동생을 걱정하는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자신의 가치관을 아이번에게 강요하는 말에 가깝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뜨끔했다.


나에게도 남동생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나와 동생의 관계가 피터와 아이번의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반면 동생은 광주에 남아 부모님 가까이에서 지냈다. 시간이 흐르고 부모님이 나이 드시면서 집안의 대소사와 현실적인 문제는 오히려 동생이 훨씬 많이 감당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아플 때 가까이에서 챙기는 일도, 집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 부딪치는 일도 대부분 동생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큰형이라는 이유로, 조금 더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로, 무의식중에 내가 동생보다 더 어른스럽고 세상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동생에게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면이 많다.

부모님 가까이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시간, 가족의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감당해온 경험은 내가 멀리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때때로 동생에게 거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투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가 살아온 방식과 짊어져온 바카라임의 무게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나는 동생의 삶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나에게 익숙한 기준으로만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메초』를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형제란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 어쩌면 가장 오랫동안 서로를 오해해온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피터가 아이번에게 품는 감정도 단순한 무시는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랑도 있고, 걱정도 있으며, 형으로서 느끼는 바카라임감도 있다. 피터는 분명 아이번을 아낀다. 다만 그 사랑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아이번의 삶을 아이번의 삶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동생을 바꾸려 한다.

사랑과 통제가 얼마나 쉽게 뒤섞일 수 있는지, 걱정이라는 이름의 말이 얼마나 쉽게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피터는 보여준다.

피터는 실비아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지만 거절당한다. 이미 나오미에게는 헤어지자고 말한 뒤였다.

그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두 관계로부터 동시에 밀려난다. 그 과정에서 거의 자살 충동에 가까운 절망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그 바닥을 지나면서 피터는 조금씩 자신의 불완전함을 바라보게 된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정상적인 삶이라고 믿었던 것들, 동생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사실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실비아가 피터를 거절한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터는 실비아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실비아는 피터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나오미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피터는 실비아를 붙잡음으로써 나오미를 버릴 이유를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비아와의 관계를 되찾는다면 자신이 내린 선택이 정당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비아는 그 점을 정확하게 찌른다.

그래서 그녀의 거절은 차갑지만, 동시에 피터를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말처럼 느껴졌다.

결국 피터는 나오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다시 깨닫고, 아이번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한다.

동생의 삶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아이번이 선택한 사랑과 삶을 인정하려 한다.

이 변화가 다소 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려는 핵심은 분명해 보였다.


피터는 자신이 믿어왔던 ‘정상적인 삶’의 틀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어떤 나이에는 어떤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형은 동생보다 성숙해야 하고, 성공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는 믿음.

그 틀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 역시 요즘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한다.

정상적인 삶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애를 이상하게 보고, 직업이 불안정하면 미성숙하다고 생각한다. 가족 안에서도 누가 더 성공했는지, 누가 더 바카라임감이 있는지를 은근히 비교한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런 기준보다 훨씬 복잡하다.

관계는 더 엉망진창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면서도 도망치고, 누군가는 걱정하면서도 상처를 준다.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옳은 사람인 것도 아니고, 겉보기에 미숙한 사람이 실제로도 미숙한 것도 아니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복잡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인터메초』가 완전히 감동적인 소설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뒤로 갈수록 지루한 부분도 있었고, 몇몇 인물의 선택은 끝까지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다. 실비아의 마음도, 피터의 변화도, 나오미와의 관계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인지도 모른다.

실제 관계도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으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하고,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채 다시 만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감정을 안고 관계를 이어간다.

이 바카라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피터와 아이번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감정이었다.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걱정하지만 상처를 주고, 가까워지고 싶지만 자꾸 어긋나는 관계.

형제란 아마 그런 관계인지도 모른다.

함께 자란 기억과 서로 다르게 살아온 시간이 동시에 쌓여 있는 관계. 같은 부모 아래에서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된 사람들.


그래서 소중하지만 어렵고, 익숙하지만 낯설다.


『인터메초』는 그런 관계의 복잡함을 길고 느리게 따라가는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 크게 폭발하는 사건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바카라을 덮고 나서는 내 안의 몇몇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동생과 나 사이에 흐르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생각하게 했다.

좋은 소설이 반드시 대단한 결론을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인터메초』는 적어도 나에게 그런 바카라이었다.

내 동생을, 그리고 나 자신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 바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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