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것이 생기면 묻고 싶어진다. 어릴 때는 더 그랬다. 모르는 것이 많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꼭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간을 설계하면서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 많아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어디에 시선이 머무는지, 어느 자리에 앉는지, 좁은 곳에서 어떻게 몸을 돌리는지를 살핀다. 같은 공간에 들어와도 움직임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의자 깊숙이 앉고, 누군가는 가장자리에 걸터앉는다. 문 가까이에 머무는 사람도 있고 안쪽까지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같은 공간을 여러 번 보다 보면 사람에게 묻기 전에 공간을 먼저 살피게 된다. 사람들이 특정한 자리에서 자꾸 몸을 돌린다면 통로 폭을 다시 재보고, 의자에 앉았다가 금방 일어나는 사람이 많으면 높이나 깊이를 확인한다. 손을 뻗었다가 다시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손잡이나 스위치의 위치를 살핀다. 사람에게 이유를 묻지 않아도 공간이 보여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불편해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정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설계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실제로 불편한 일이 생기고 있는지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사람의 움직임을 오래 보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누군가 평소보다 말이 적거나 표정이 어두우면 눈에 들어온다. 예전 같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먼저 물었을 것이다. 지금은 잠시 멈춘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하는 일인가.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고, 가족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상대가 먼저 꺼내지 않은 이야기를 내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끌어낼 필요는 없었다.
사람을 볼 때는 특히 내가 본 것과 내가 생각한 것을 구분하려 한다.
말이 없었다. 평소보다 늦게 왔다. 오늘은 웃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내가 본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 차이를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사람은 빈 곳에 이유를 채우고 싶어 한다. 앞뒤를 맞추고 이야기를 완성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은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실처럼 굳어질 수 있다.
공간에서는 작은 차이 하나가 사람의 움직임을 바꾼다. 의자의 높이가 조금만 달라도 앉는 자세가 달라지고, 통로가 조금만 좁아도 사람은 자연스럽게 몸을 돌린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정 하나가 그날의 움직임을 바꿀 수도 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어야 하는 이유다.
어릴 때 산에서 바위손을 가져왔던 기억도 떠오른다. 처음 본 식물이 신기하고 예뻐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 두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 심어놓은 바위손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시들었다.
내가 본 것은 예쁜 모습 하나였고, 그 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환경은 보지 못했다.
그 기억은 사람을 바라볼 때도 가끔 떠오른다. 눈앞에 드러난 모습 하나를 붙잡고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부분은 내 마음대로 채우게 된다. 알고 싶다는 마음과 알아도 되는 권리는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필요한 질문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설계 현장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사용자에게 직접 물어야 할 때도 있다. 어디가 불편한지, 평소에는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들어야 실제 생활을 알 수 있다. 다만 질문하기 전에 내가 이미 답을 정해놓은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다. 가족이나 친구가 도움이 필요한데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가 정말 그 이야기를 알아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내가 궁금해서 묻는 것과 상대에게 필요한 질문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호기심은 모르는 것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자연을 보며 생긴 질문은 바카라으로 이어졌고, 바카라에서 만난 궁금증은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돌아왔다. 공간을 설계하면서는 사람의 움직임이 새로운 질문을 만들었다.
그런데 오래 바라볼수록 질문의 방법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왜 그런 지부터 궁금했다. 이제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있는 데까지 본 뒤에도 남는 것이 있다면 그때 질문한다.
궁금하다는 마음을 없애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마음을 서둘러 상대에게 던지지 않고 내 안에 조금 더 두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상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일도 있다. 끝내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
예전 같으면 답을 얻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모르는 것을 모른 채 두면서도 계속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오래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