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열차에 다른 하루가 있다

by이룸

열차를 타면 이상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데 누구 하나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비슷한 표정으로 열차에 오른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사람도 있고,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어폰을 꽂은 사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 눈을 감은 사람도 있다. 겉으로 보면 모두 비슷한 아침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차에서 내린 뒤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게 되는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는 서로 다르다.

나는 가끔 그 차이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예전처럼 꼭 답을 알아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오래 들여다본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어둡다고 해서 마음까지 어두운 것도 아니고, 웃고 있다고 해서 아무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옷차림을 보고 직업을 짐작하거나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본 것은 그 순간의 모습일 뿐 그 사람의 하루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차 안에서는 사람의 하루가 잠시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한쪽에서는 젊은 사람이 서서 졸고 있다. 몸이 열차의 흔들림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고,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손잡이를 단단히 잡은 채 휴대전화를 바라본다. 맞은편에는 바카라을 펼쳐 놓았지만 몇 장째 같은 곳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카라을 읽는 것인지 잠깐 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방을 챙긴다. 문이 열리면 바로 내릴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도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목적지가 아직 멀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작은 차이를 보는 것이 좋다. 누가 특별히 눈에 띄어서가 아니라 같은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열차는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달리고 정해진 역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하루의 시작이고, 누군가에게는 병원에 가는 길일 수 있다. 학교에 가는 학생에게는 시험을 앞둔 아침일 수도 있고,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에게는 기다리던 하루일 수도 있다.

그 사정을 나는 알 수 없다.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모르는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내가 보지 못한 이야기를 마음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사람을 보는 습관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관찰하는 일과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젊었을 때는 눈에 들어온 것을 곧바로 내 방식대로 해석하려 했지만, 지금은 한 번 더 멈춘다. 내가 본 것이 정말 전부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열차 안에서도 그 질문은 남는다. 창밖으로 건물이 지나가다가 터널에 들어서면 차창에는 실내의 모습이 비친다. 잠시 동안 바깥 풍경 대신 열차 안의 사람들이 유리창에 겹쳐 보인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본다. 서로 마주 앉아 있어도 눈길은 좀처럼 닿지 않는다. 수십 명이 한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생각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도 서로의 하루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역에서 사람이 많이 내리면 빈자리가 생긴다. 서 있던 사람이 앉고 앉아 있던 사람이 다시 일어난다. 조금 전까지 복잡했던 자리가 금세 비어 보이고, 다음 역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이 올라온다. 열차는 그대로인데 사람이 바뀐다. 사람이 바뀌면 공간의 모습도 달라진다. 빈 사무실과 사람들이 일하는 사무실이 다르고, 손님이 없는 식당과 손님으로 가득한 식당도 다르다. 의자와 테이블과 조명이 그대로 있어도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움직임이 달라지고 공간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열차도 그렇다. 사람이 없을 때는 단순한 객차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들어오면 하나의 생활공간이 된다. 누군가는 서 있고 누군가는 앉으며, 누군가는 잠을 자고 누군가는 바카라을 읽는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창밖만 바라본다. 나는 그 안에서 특별한 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순간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역에 들어갈 때 사람들의 몸이 한꺼번에 앞으로 쏠리는 모습이나 문이 열리자마자 내릴 사람과 그대로 앉아 있는 사람의 움직임, 비어 있는 자리를 발견하고 방향을 바꾸는 사람의 걸음 같은 것들이다. 아주 평범한 장면이지만 그래서인지 더 오래 남는다.

어릴 때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답을 찾고 싶었다. 바카라이 없으면 답을 얻기 어려웠고 누군가에게 물어도 제대로 설명해 줄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을 보고 바카라을 읽고 직접 확인하면서 하나씩 알아갔다. 지금은 다르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휴대전화 하나로 금방 찾아볼 수 있고, 열차 안에서도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사람에 관한 궁금증은 조금 다르다. 저 사람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저 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사람은 왜 저 역에서 내릴까 하는 질문은 검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하루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냥 궁금한 채로 둔다. 그 질문이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눈앞의 장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서 있던 사람도 사라지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비어 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다. 조금 전까지 이 열차 안에 있던 하루 하나가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다시 창밖을 본다. 열차는 다음 역을 향해 달린다. 같은 선로를 지나고 같은 역에 멈추지만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은 매번 달라진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삶에서 ‘복수성(plurality)’을 중요하게 이야기한 것도 이런 모습과 닿아 있는 것 같다. 서로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열차 안에서도 각자의 목적과 속도와 사정은 다르지만 한동안 같은 객차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안에서 불편한 순간도 생긴다. 좁은 자리에서 어깨가 부딪히고 누군가의 가방이 발에 걸리기도 한다. 내 앞을 막고 서 있는 사람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순간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른 몸, 다른 속도,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서로의 하루를 알지 못하면서도 잠시 같은 세계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어릴 때 나는 눈앞의 것을 보면 이유가 궁금했다. 지금도 사람을 보면 궁금한 것이 생긴다. 다만 이제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내가 대신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태도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온다. 차창에 겹쳐 있던 사람들이 다시 각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누군가는 다음 역에서 내리고 누군가는 더 먼 곳까지 간다. 나는 그들의 하루를 알지 못한다. 그래도 잠시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열차는 오늘도 같은 선로를 달리지만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매번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열차도 같은 하루를 반복하지 않는다. 나는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차창에 비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내려 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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