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다

by이룸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파칭코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음악과 쇠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기계마다 다른 음악이 흘렀고, 구슬이 기계 안쪽을 빠르게 오가는 소리가 겹쳤다. 어느 자리에서 갑자기 음악이 커지고 구슬이 쏟아지면 주변 사람들의 고개가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에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시선이 돌아갔다. 귀를 막은 채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고, 쟁반으로 쏟아지는 구슬을 두 손으로 받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맡은 일 가운데 하나는 마이크를 들고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당첨된 번호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몇 번대 축하드립니다.” 처음에는 기계가 너무 많아 번호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기계들이 줄을 맞춰 놓여 있었고, 숫자만 외워서는 어느 자리가 몇 번대인지 금방 헷갈렸다.

그래서 종이에 매장 배치를 그렸다. 기계가 놓인 줄을 나누고 통로를 표시한 다음 번호를 하나씩 적었다. 방송해야 할 번호가 나오면 종이에 그려놓은 자리를 먼저 찾고 실제 매장 안에서 그곳으로 갔다. 숫자만 외우는 것보다 공간과 함께 기억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그 모습을 본 관리자가 나에게 마이크를 맡겼다.

마이크를 들고 매장을 다니다 보니 종이에 적어놓은 숫자가 실제 자리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53번대라고 하면 숫자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놓인 기계와 앞의 의자, 옆으로 이어진 통로가 함께 생각났다. 어느 쪽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번호를 찾기 위해 그렸던 그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그림을 통해 매장 안의 움직임까지 보게 됐다.

한쪽에서 당첨을 알리는 소리가 터지면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구슬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옆자리 사람이 잠시 손을 멈추기도 했다. 직원이 구슬이 가득 담긴 상자를 옮겨가면 비어 있던 자리에 다시 사람이 앉았다. 사람 하나가 일어나면 옆자리와 통로의 모습도 달라졌다. 음악이 커졌다가 잦아들고, 구슬 소리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면서 매장 안의 분위기도 계속 달라졌다.

그때는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기계의 위치를 기억하려고 그렸던 작은 도면 덕분에 숫자와 공간이 연결됐고, 공간을 따라가다 보니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까지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은 내가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과 꽤 닮아 있었다. 벽이나 기계의 위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느 쪽으로 몸을 돌리는지를 함께 보게 된 것이다. 공간은 사람이 들어오기 전과 들어온 뒤의 모습이 달랐다. 같은 자리에 같은 기계가 놓여 있어도 사람이 많을 때와 적을 때의 모습은 달랐고, 같은 소리도 그때그때 사람들의 움직임을 다르게 만들었다.

사람을 바라볼 때도 나는 자꾸 이유가 궁금했다. 누군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고, 평소보다 말이 없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생각했다. 웃지 않는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싶었고, 혼자 있는 사람을 보면 왜 혼자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본 것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는 것, 말이 적었다는 것, 웃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그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파칭코 매장에서 번호를 외우려고 그렸던 작은 도면을 생각하면 이것도 비슷하다. 종이 위에는 기계의 위치와 숫자가 적혀 있었고, 나는 그 정보를 따라 매장 안을 다녔다. 그러면서 음악이 커지면 고개가 돌아가고, 구슬이 쏟아지면 손이 바빠지고, 직원이 상자를 옮기면 자리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본 것은 분명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장면만으로 그 사람들의 마음까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 바라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많이 보았다고 해서 전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바라볼수록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인다.

그래서 지금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한 번 더 바라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대로 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내 생각으로 서둘러 채우지 않는다.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같은 장면도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