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은 면소재지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동네에 있었다. 면소재지를 지나 리로 들어가는 길 끝자락에 가까운 마을이었다. 버스가 자주 다니는 큰길까지는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고, 학교는 우리 면소재지가 아니라 다른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였다. 걸어서 다니기에는 너무 멀었고 자전거를 타도 한 시간 이상 달려야 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버스를 타야 했다.
그 버스는 큰길에서 우리 동네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버스였다. 새벽 첫차가 우리 동네에서 출발했고, 밤 막차는 우리 동네가 종점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출발한 버스는 여러 면을 지나 시내에 있는 종점까지 갔다. 지금처럼 버스가 촘촘하게 다니던 때가 아니어서 첫차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늦잠을 잔 날에는 바카라가방을 둘러메고 큰길까지 2킬로미터를 있는 힘껏 달렸다. 버스가 지나가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버스에 올라타면 그제야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더했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버스는 출발하기 전부터 만원이었다. 자리가 없어도 계속 올라탔다. 몸을 밀어 넣고 또 밀어 넣다 보면 서로 어깨가 닿고 가방이 눌렸지만, 버스는 더 커지지 않았다.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으면 다음 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창가에 앉는 것은 고사하고 창문조차 보이지 않는 날도 많았다. 여러 사람의 몸에서 나는 열기와 젖은 옷 냄새가 뒤섞인 버스 안은 숨을 쉬는 것조차 답답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동네에서 이미 몇 명의 학생이 버스를 타지 못했는데, 버스가 울퉁불퉁한 흙길을 덜컹거리며 몇 번 달리고 나면 다음 동네 학생들이 올라탈 자리가 생겼다. 사람이 내린 것도 아니고 버스가 커진 것도 아니었다. 앞에서 몸을 비집고 타느라 서로 밀착해 있던 사람들이 흔들림을 몇 번 견디는 사이 조금씩 자리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누군가는 가방을 앞으로 당겼으며, 서 있던 사람은 손잡이를 바꿔 잡았다. 그렇게 사람 하나가 들어갈 틈이 생겼다.
다음 정류장에서 또 한두 명이 올라탔다.
어린 마음에는 정말 마법처럼 보였다. 분명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가득 찼는데 버스는 다음 동네 사람을 받아들였고, 또 다음 동네에 가면 다시 몇 사람이 올라탔다. 그렇게 여러 면을 지나 시내까지 가는 동안 버스는 계속 사람을 실어 날랐다. 나는 그 좁은 공간이 사람들의 몸짓만으로 조금씩 모양을 바꾸는 것이 신기했다.
새벽 첫차를 타는 날이면 어머니는 더 일찍 일어났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밥을 짓고 간단한 아침을 차린 뒤 도시락을 싸주었다. 반찬은 멸치무침과 김치가 대부분이었고, 한동안 같은 반찬이 이어졌다. 가끔 계란 하나가 도시락 위에 올라오는 날이면 그것만으로도 특별했다.
나는 바카라가방과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었다. 버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가르면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올라탔고, 자리가 있으면 나는 창가부터 찾았다.
창가에 앉으면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낡은 좌석에 몸을 기댔다. 차가운 창문이 팔에 닿았고, 엔진 소리가 낮게 울렸다. 버스가 출발하면 몸도 좌석과 함께 흔들렸다.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덜컹거림이 그대로 몸으로 전해졌다.
그때는 가로등도 거의 없었다. 새벽의 논과 밭은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고, 띄엄띄엄 있는 집에서 쇠어 나오는 불빛만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전봇대가 하나씩 지나가고, 익숙한 풍경이 버스 뒤로 밀려났다. 같은 길을 매일 지나면서도 계절이 바뀌면 보이는 모습이 달랐다. 겨울에는 비어 있는 논이 보였고, 봄이면 논두렁과 길가에 풀이 올라왔다. 여름에는 논의 색이 짙어지고 나무가 무성해졌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이 차창을 타고 흘러내렸고, 와이퍼가 움직일 때마다 흐릿했던 길이 잠깐씩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는 우리 동네를 빠져나와 다른 면소재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이 타고 내렸고, 다시 다른 면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계속 올라탔다. 나는 창밖을 보다가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는 졸고 있었고, 누군가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장 누나는 좁은 통로를 부지런히 오갔다.
승객이 올라오면 차비를 받고, 돈을 재빨리 계산해 잔돈을 돌려주었다. 한 사람의 돈을 세면서도 다음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고, 손에 쥔 동전과 지폐를 빠르게 구분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몸에 밴 손놀림이었다. 출발할 때가 되면 손잡이를 붙잡고 문 쪽으로 가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오라이!”
버스가 움직이면 차장 누나의 몸도 함께 흔들렸다. 손잡이를 잡고 중심을 버티면서 승객을 살폈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어린 내 눈에도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친누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차장 누나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중 자주 마주치는 차장 누나는 나를 동생처럼 대해주었다. 버스에 타면 알아보고 말을 걸어주었고, 쉬는 날에는 나를 시내로 불러내기도 했다.
그 버스는 전날 막차를 운행한 운전기사와 여자 차장이 우리 친척집에서 묵었다. 친척집에서는 숙박비를 받지 않는 대신 가족이 버스를 탈 때 차비를 받지 않기로 했고, 친척 아주머니는 나도 차비를 내지 않도록 차장 누나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다른 학생들은 차비를 내는데 나는 그냥 버스를 타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차장 누나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었다. 오히려 나를 잘 챙겼다.
쉬는 날 가끔 누나는 나를 시내로 데리고 갔다. 면소재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았다. 나는 누나를 따라다니며 시내를 구경했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가 더 오래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면소재지 하나를 벗어나는 것조차 지금과 달랐다. 우리 집에서 큰길까지 2킬로미터를 나와야 했고, 학교는 다른 면소재지에 있었다. 버스는 그 면을 지나 또 다른 면들을 지나 시내까지 이어졌다. 내가 사는 마을과 학교와 시내 사이에는 논과 밭, 산과 여러 마을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같은 논과 밭이 보였다. 어느 집 앞에 나무가 새로 자랐는지, 논에 물이 얼마나 찼는지, 정류장에 누가 서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같은 길을 지나면서도 날씨와 계절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랐다. 창밖의 풍경을 보다가 버스 안을 돌아보면 또 다른 하루가 그 좁은 공간 안에 들어 있었다.
나중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버스를 타는 일은 줄어들었다. 학교까지 자전거로 한 시간 이상 달려야 했지만,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큰길까지 뛰어나가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새벽 버스의 기억은 오래 남았다. 어둠 속으로 들어오던 첫차의 불빛, 비와 눈이 오는 날 사람으로 가득 차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버스, 울퉁불퉁한 흙길을 몇 번 덜컹거리면 거짓말처럼 다시 생겨나던 자리, 여러 면을 지나 시내까지 이어지던 길이 아직도 선명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차장 누나의 “오라이!”와 창가에 기대어 바라보던 새벽의 논과 밭이다. 차가운 창문에 팔을 기대고 있으면 익숙한 풍경이 어둠 속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그때의 버스 창가는 내게 학교로 가는 길이면서, 마을 밖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