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을 그냥 보는 일이 별로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물건을 보면 겉모습보다 안쪽이 궁금해졌다.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조립할 때는 어떤 순서였을까. 손으로 만져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는 한 번 뜯어본다.
의자를 보면 앉는 부분과 등받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리는 어디에서 힘을 받는지 살핀다. 문을 보면 손잡이보다 경첩과 문짝의 무게가 어디에 걸리는지 생각한다. 가구점에서는 앞모습보다 뒤쪽 연결 부위와 나사, 보이지 않는 마감을 먼저 보게 된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높이와 깊이가 몸에 어떻게 맞는지,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앉는지도 눈에 들어온다. 같은 물건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쓰인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 것이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에 들어가면 벽과 천장, 바닥과 창, 조명과 가구를 따로 떼어놓았다가 다시 연결해 본다. 이 벽은 왜 여기에 있을까. 없애면 무엇이 달라질까. 창을 옮기면 빛이 어떻게 들어올까. 가구의 방향을 바꾸면 사람의 움직임은 어떻게 달라질까. 처음에는 그저 재미로 하던 생각이었는데, 실내건축 일을 시작하면서 이 버릇은 도면을 읽는 방식이 되었다.
선 하나가 벽이 되고, 벽에 문이 생기고, 문으로 사람이 들어온다. 사람이 들어오면 가구가 필요하고, 가구가 놓이면 움직일 공간이 필요하다. 싱크대 위치를 조금 옮기면 냉장고와 식탁의 관계가 달라지고, 식탁을 옮기면 의자를 빼는 공간과 사람의 통로까지 달라진다. 도면에서는 몇 센티미터의 변화지만 생활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움직임이 된다. 그래서 한 부분을 고칠 때도 그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머릿속으로 따라가 보았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작은 디자인 사무실에서 일했다. 예식장에는 석고 부조를 만들었고, 식당 입구나 벽면에는 FRP 수지를 이용해 폭포 같은 조형물을 만들었다. 찰흙으로 형태를 빚어 틀을 뜨고 석고로 옮기거나, 유리섬유와 수지를 겹쳐 바위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재료가 형태를 얻고 평평한 벽이 입체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과정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산의 바위를 이용해 형태를 뜨는 작업을 보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바위에 경화제를 바르고 표면의 모양을 떠서 인공적인 바위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수요가 있었고, 당시에는 이런 일을 하면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바위를 하나의 재료처럼 다루는 방식이 불편했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자연의 일부를 가져와 자연을 흉내 내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완성된 폭포는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었다. 석고 부조 역시 조명을 받으면 꽤 아름다웠다. 문제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 보다 무엇을 이용해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마음에 걸렸다. 자연을 닮은 공간을 만들면서 정작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계속할수록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보다 왜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커졌다. 단순히 손기술을 익혀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공간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고, 재료와 구조를 이해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만드는 것이 사람과 환경에 어떤 관계를 맺는지까지 생각할 수 있는 공부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유학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일본에 가야겠다고 정해놓았던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눈앞의 의뢰를 해결하는 기술은 배울 수 있었지만, 그 기술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공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까지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는 많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었다.
일본을 선택한 것도 디자인을 좀 더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접 보고, 그리고, 만들면서 공간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렇게 작은 디자인 사무실에서 시작된 고민은 자연스럽게 유학이라는 다음 선택으로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무실에서의 경험은 내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꿔놓은 시간이기도 했다. 석고와 수지로 자연을 닮은 것을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무엇을 만드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대상으로 삼고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 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 바위틈의 작은 식물을 한참 바라보던 아이가 있었다. 왜 그곳에서 자라는지 궁금해서 나무하던 일을 잠시 잊었던 아이였다. 그때는 그저 궁금해서 바라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선은 물건의 구조를 살피고 공간의 관계를 읽는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안에 질문 하나가 더 생겼다.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결국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 사람인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