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괜찮아야 한다고 말했다
팀장이 되기 전에는, 팀장이 되고 나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물론, 그런 기대가 없어지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순히 실무를 더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팀장은 팀장으로서의 역할에 따른 일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사평가라든지, 아니면 조직관리 차원에서 커리어 개발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또는 부서 간의 업무 조율을 위한 회의 참석이라든지, 거기에 요새 팀장의 트렌드가 실무형 팀장이다 보니,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나의 바카라임에 따른 일들이 더 늘어나기만 했다.
거기에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니 사실 이미,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체력을 어느 정도 소진하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셈이었다. 자연스럽게 일이 많거나 바쁜 날에는 들어오면서부터 가볍게 한숨을 들이마시며 오는 경우가 많았고, 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면서 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끝내는 날도 많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멀티태스킹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면서도, 언제나 그렇기에 점점 나의 상태를 살피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그날도 월초 결산을 끝내고 바로 다음 사이클의 손익추정을 들어가는 바쁜 시기였다. 여느 때처럼 나의 손은 마우스와 키보드 위에, 머리에는 회의를 듣는 헤드셋, 그리고 모니터에는 사람들의 질문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었기에 크게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팀원이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팀장님, 일이 너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괜찮으세요?"
그 눈빛을 그저 잠시 스쳐 보내면서 나는 무심결에 답했다.
"아, 아니에요. 거의 다 끝났어요. 괜찮아요."
옆에 있던 팀원은 나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걱정스러운 눈길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괜찮다고 말하는 나에게 채근할 수는 없었기에 이내 자기 업무로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괜찮다고 말했을까, 아니, 괜찮다고 말한 게 이상한가?'
사실, 괜찮다는 말은 내가 꽤 자주 하는 표현 중 하나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도, 요새 너무 바쁘지 않냐는 말에도, 힘들면 이야기하라는 말에도, 많이 도와줘서 덕분에 잘 끝내서 고맙다는 말에도, 집에서 가족들이 회사에서 별일 없냐는 말에도, 또는, 스스로 퇴근길에 나는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가에 대한 자문에서도, 나는 언제나 첫 시작을 그렇게 맺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다. 괜찮다는 단순한 한 문장이지만, 사실은 정말로 괜찮은 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괜찮은 날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이 많다고는 해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양은 아니었고, 조금 바쁜 시기가 지나가면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기가 오기도 했었다. 그러니 그때의 괜찮다는, 정말로 괜찮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인내를 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인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까운 의미를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간편함이었다. 나의 힘듦도, 내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 생각을 누군가의 걱정스러운 얼굴에 대고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그런 편리함이었다. 누군가는 그래도 다시 한번 정말 괜찮으냐고 물어볼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괜찮다는 짧은 한 마디는 더 이상의 대화를 발전시키지 않고 묻어버릴 수 있는 좋은 단어였다.
나는 어쩌면, 그 편안함을 꽤나 좋아해서 자주 썼을지도 모른다. 팀원에게 실제로 내 일이 좀 많으니 도와줄 수 있냐고 하면, 어떤 사람에게 결국엔 걱정을 끼치는 게 싫었다.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에 왜 힘든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가 나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도와주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쩐지 나에겐 그것이 그 사람에게 나를 부담 지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건 내가 지금도 그렇게까지 익숙해하지 못하는 감정 중 하나였다.
그러니 팀원들에게는 힘들면 이야기하라고 했으면서도, 정작 나의 힘듦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혼자 고민하지 말라고 언제나 이야기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은 항상 나의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그건, 팀장으로서 팀장이 너무 많은 고민에 흔들리고 있으면 팀원들로 하여금 괜한 불안을 일으킨다는 나의 선입견이 강해서일지도 모른다. 그 선입견 안에서,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하면 내가 팀장으로서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괜찮다, 별일 아니다, 조금 바쁜데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표현을 입에 달고, 걱정하는 팀원의 얼굴을 뒤로한 채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라고 딱히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렇다기보다는, 팀장이니까 당연히 그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그 어려움에 괜찮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선택한 자리고, 나에게 주어진 바카라임이기에, 다른 모두도 그 정도는 견디고 있을 것이다. 나 혼자서만 힘든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팀장이 되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나는 팀원들에게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나에게는 괜찮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팀원들에게는 실수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나는 실수할 틈을 주지 않았다.
힘들면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나는 도움을 요청할 이유부터 찾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던 말들을 정작 나 자신에게는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괜찮아요’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
조금만 더 하면 괜찮아질 거야.
오늘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넘겼다.
괜찮다는 말을 반복할수록, 나는 조금씩 내 상태를 알기 어려워졌다. 지금의 내가 그저 피곤한 건지, 정말 힘든 건지, 아니면 그저 바쁜 것뿐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알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언제나 흘렀기에, 기계적으로 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고,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숫자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며 살아갔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말은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서도 숨기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그저 조금 피곤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바쁜 시기를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도 퇴근을 했고,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했다.
그때는 아직은 몰랐다. 어느 날부터 출근하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든 일이 되어버릴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