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염처럼 욕심을 버리고 순한 마음으로

‘태안 자염’이란 소금이 있다. 제품 포장지에 자염 생산 재현 모습이 있는데 그 모델이 젊었을 때 외삼촌이다. 그런 이유로 요리할 때 천일염보다는 자염을 주로 사용하고 소금에 대한 관심도 많다. 시골집에서는 자염으로 김치도 담근다. 외삼촌이 ‘태안 자염’ 모델이 된 건 자염 복원 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태안문화원은 2001년 태안 근흥면 앞바다에서 국내 최초로 자염을 복원했다. 복원 작업은 자염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경험이 있었던 현지 주민들의 증언과 문헌을 통해 이뤄졌다. 그 시기에 복원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수천 년 동안 내려왔던 우리 전통문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자염(煮鹽)’이란 햇볕에 말린 갯벌 흙을 바닷물로 투과시켜 만든 함수를 가마솥에 끓여 만든 전통 소금을 말한다. 예전에는 화염(火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히 태안 자염은 전통 방식을 복원하여 현대화한 공정으로 만든 소금으로 쓴맛과 떫은맛이 없고 감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천일염이나 정제염을 쓰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자염을 생산·사용해 왔다. 우리나라의 소금 생산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 시대 소금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중요한 물자 중 하나였다. “선조 28년(1595년)에 수령이 소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을 직접 주관하는 ‘관영자염장’을 태안에 설치하고, 인조 16년(1638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어 국가 재정에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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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은 1907년 일본의 인천 주안 염전 시범 운영을 통해 보급됐다. 일제는 식용뿐만 아니라 무기 산업의 원료와 전쟁 재원 확보를 위해 한반도에서 천일염 생산을 확대했고 해방 이후 정부도 천일염 생산 장려로 자염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염전을 만들기 위한 간척 사업과 높은 생산 단가로 인해 자염 생산은 1960년대 결국 우리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001년 태안 자염 복원 사업으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태안문화원의 자염 복원 사업이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전통 소금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이후 자염을 생산, 판매하는 곳이 생겼고 지금도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소량이지만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2019년 태안군 고남패총박물관에서 태안 자염 기획 전시가 있었으니 아직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살아 숨 쉬고는 있다. 아쉬운 점은 2014년 이후 재현 인력과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10여 년간 이어졌던 자염 축제가 중단된 것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천일염이 미네랄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 오히려 천일염에는 불순물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그에 비한다면 자염이 건강한 소금이지 않나 싶다.


중학교 동창 중에 염전을 운영하는 집이 있을 정도로 어릴 적만 해도 태안반도 곳곳에 염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소금만큼은 부족함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소금 두세 포대씩은 놓고 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전에 소금은 백색 황금이라고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았다. 고대 로마의 3대 교역품은 황금, 노예 그리고 소금이었다. 소금이 금과 교환될 때도 있었으며 노예의 몸무게만큼의 소금과 맞교환되기도 했다. 고대부터 소금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세금을 부과했다. 그만큼 부 축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베네치아는 소금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 군사와 예술·문화 사업을 확장해 천 년간 지중해의 패권을 유지했다. 소금에 의해 세계 역사가 바뀐 사례도 다반사다. 프랑스대혁명은 소금세와 소금 강매가 원인이 되었고 인도의 간디는 영국이 인도인들의 소금 채취를 금지하고 소금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이들이 고통 받자 1930년 ‘소금 행진’을 시작했다. 중국 황소의 난 뒤에는 소금의 암거래로 부를 축적한 세력들이 있었다. 1648년 러시아에서도 과도한 소금세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소금은 부와 권력을 위해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어 왔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치약과 함께 소금이 있다. 구취 제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민간신앙에서 소금은 정화와 퇴마의 기능을 한다. 소금은 부정한 것을 정화하거나 액을 쫓는 기능을 한다. 굿을 할 때 무당은 물과 소금을 뿌려 굿터를 정화한다. 할머니, 어머니들은 재수 없거나 몹쓸 사람이 집에 들고날 때 소금을 뿌려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자 했다. 소금은 철저한 응징과 복수의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기원전 149~146년에 벌어진 로마와 카르타고의 제3차 포에니전쟁이 로마의 승리로 끝나고 로마군은 도시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소금을 뿌려 불모지로 만들었다. 소금의 잔인한 면은 또 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소금 고문이 그것이다. 피가 흐르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 소금의 삼투 현상으로 끔찍한 고통을 일으킨다. 소금이 지혈과 소독 효과가 있으니 살리면서 고문하는 정말 지독 한, 최악의 고문 방법이다.


소금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민중 봉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권력과 부의 대상이기도 했고 복수와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에서 소금으로 인해 발생한 많은 사건은 대부분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하느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씀했듯이 순백의 소금처럼 깨끗하게 살았더라면 피로 얼룩진 역사의 페이지는 상당 부분 줄어들었을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코 9장 50절)라는 말씀이 있다. 하지만 인류는 소금의 짠맛 대신 욕망이라는 탐욕의 맛에 중독되어 왔다. 그 결과 최근까지 인류는 고통과 슬픔 안에서 신음해야 했다. 소금에 선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정화와 탐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황금과 권력에 눈이 멀어 소금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효율성을 잊고 살지는 않았나 싶다.


자염은 천일염이나 정제염보다 입자가 곱고 부드럽다. 맛도 순하고 쓴맛이 없다. 바닷물을 펄펄 끓였기 때문에 불순물은 없어지고 순수한 소금 성분만 남는다. 욕심 없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우리도 불순물이 제거된 자염처럼 소금에 가졌던 헛된 욕심을 버리고 살아간다면 삶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요즘 ‘처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내와의 관계가 좋아야 가정도 평화롭고 세상 모든 일이 순조롭다. 오늘은 가족을 위해 맛난 저녁을 준비해 봐야겠다. 음식 간은 불순물이 없는 순한 태안 자염으로 해야겠다. 아내와 우리 가족의 평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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