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를 내어 주는 민어

우리는 누군가에게 전부를 내어준 적이 있는가?

누군 ‘뿌욱~뿌욱~’ 운다고 하고 누군가는 ‘빡~빡~’ 운다고 한다. 여름철 민어 떼 우는 소리다. 내가 듣기론 ‘꾸욱~꾸욱’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 민어도 각자의 목소리가 있나 보다. 민어는 영어로 ‘croaker’이다. ‘croaker’는 까악까악 우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민어는 소리 내어 울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민어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유명하다. 복날이 가까워지면 횟집이나 남도 음식점 앞에는 어김없이 ‘민어탕’이나 ‘민어’라는 종이가 붙곤 한다. 그만큼 복달임 음식의 대표 주자다. 하지만 ‘民魚’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격은 만만치 않다. 민어는 언제부터 여름 대표 음식이 됐을까? 그리고 진짜 백성들의 생선이었을까? 과거 자료를 통해 민어에게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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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는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석수어(石首魚)’로,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면어(鮸魚)’라고 표기되어 있다. 석수어는 조기와 비슷해서 붙여진 듯하고 면어의 ‘鮸(면)’자도 참조기라는 뜻이다. 사실 민어는 조기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네다섯 배 큰 조기라고 보면 된다. ‘면어’가 ‘민어’ 가 된 이유는 백성의 물고기여서가 아니라 발음의 편리성 때문이라고 한다. ‘면(鮸)’자의 중국식 발음이 ‘민’이고 ‘면’의 한자 획수도 많다 보니 민어(民魚)로 굳어진 것이다. 쉽고 편한 대로 말을 바꾸거나 줄여 쓰는 건 옛 조상들이나 지금의 MZ 세대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민어는 백성들이 즐겨 먹고 제사상에도 올랐던 생선이다.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민어는 흔한 생선이었다. 하지만 맛있고 쓰임새가 많은 생선이었다. 『자산어보』에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든다. …젓갈이나 어포가 모두 맛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서유구가 1820년경 어류학에 관해 기술한 『난호어 목지』에는 “부레는 교착력이 강하여 아교로 쓰이고 민어의 알젓은 진귀한 식품이고 민어의 염건품(鹽乾品, 소금에 절여 만든 제품. 보통 굴비나 염대구 따위를 이른다.)은 손님 접대용이나 제수용으로 쓰인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렇듯 민어는 버릴 것 하나 없는 생선이다. 민어는 소금에 절여 말리면 장기간 보관이 용이하고 그 맛도 좋다. 이응희(1579~1651년)의『옥담사 집』어물류에는 민어를 읊으며 “…바짝 말린 후에는 밥 먹을 때 손이 먼저 가리라.”라는 문구가 있다.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다.”라는 말처럼 민어 부레는 다른 생선과는 달리 귀한 대접을 받으며 회로 즐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민어 부레는 접착제를 만드는 데 쓰였다. 동물의 힘줄이나 가죽 등으로 만드는 아교보다 부레풀은 접착력이 강하고 유연성이 뛰어나 나전칠기나 각궁을 만들 때 쓰였다. 민어 부레로 ‘어교순대’라는 순대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민어는 구이로도 많이 먹고 민어 알로 어란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민어 살은 담백해 회로도 먹고 만두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살뿐만 아니라 껍질도 그 식감과 맛을 놓치 기에는 아깝다. 민어를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민어전이다. 깔끔하면서 감칠맛 나는 민어전 앞에서는 도저히 젓가락질이 멈추지 않는다. 민어맑은탕도 그 시원함이 일품이다. 아마 복달임 음식의 명성을 얻게 된 건 탕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저 생선 하나로 생활용품에서부터 다양한 음식까지 만들어 낸 선조들이 대단할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생선 한마리를 알뜰하게 사용한 선조들의 삶에서 팍팍하고 힘든 살림살이가 엿보여 서글프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 정성이 있었기에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더욱 빛난 건 아니었을까.


이쯤에서 여럿이 모여 민어회를 더 즐길 방법을 소개하자면, 우선 그 크기가 13~15㎏ 되는 민어 한 마리면 이십 명은 족히 먹고 남는다는 것. 먼저 부레를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부레를 계속 씹다 보면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민어를 탐한다. 부드러운 민어회와 담백한 민어전, 시원한 민어맑은탕까지. 大민어 한 마리를 먹고 나면 무더운 여름날을 이겨 낼 힘이 생긴다. 민어회를 즐긴 사람이라면 모든걸 내어 준 민어가 고마울 따름이다.


정신없이 민어에 빠져 있다가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민어처럼 내 전부를 내어 준 적이 있나? 전부는 고사하고 마음 한 조각 아낌없이 준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아낌없이 준다는 것.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 내어 준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시인 김옥종의 <민어의 노래>에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목살은 묵은지에 감아 먹고 늙은 오이 짠지는 볼살에 얹어 먹고/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가는 소금으로 엮어 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 내고/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처진 친구에게 내어 주고….”라는 구절이 있다. 민어는 자신의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 준다. 그 내어 줌은 어머니, 아버지의 보살핌과 사랑과 결이 같은 듯하다.


현대슬롯에서 자기희생적으로 전부를 내어 주는 삶은 바보스럽다고 놀림 받기 일쑤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무한 경쟁 슬롯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없는 부모님의 관심이 한 개인을 온전히 성장시킴을 봐 왔고,자신의 피와 살을 내어 줌으로 세상을 바꾼 이의 아낌없는 사랑을 알고 있다. 내어 줌은 비우는 것도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내어 줌은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최고의 마음가짐이다. 민어가 배 속의 부레부터 껍질까지 전부를 내어 줌으로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힘들고 고단한 날을 지탱하게 해 주듯이 우리도 내어 줌을 통해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웠으면 한다. 어쩌면 백성들에게 모든 걸 내어 주기에 ‘면어’가 아니라 ‘민어’로 불리지 않았나 싶다. 우리도 민어처럼 옆에 있는 가족이나 온라인 게임 동료, 이웃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 주자. 마음을 내준다는 게 쉽지 않지만,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면 그것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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