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에서 파닥대는 놈들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소주 한잔을 목에 털어 넣고 하얀 살 한 점을 간장에 녹아든 고추냉이에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광어회에 소주 한잔은 힘든 업무를 끝낸 나에게 ‘이제 끝났구나.’라는 해방감을 준다. 우리가 생선회를 먹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수렵을 시작하고부터다. 지금과 같이 생선살을 얇게 썰어 접시에 내서 먹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었다. 『논어』 향당편에 공자의 식습관을 설명한 부분이 나온다. “食不厭精膾不厭細(식부염정 회부염세)”가 그 첫 문장이다. 공자는 “밥은 잘 정미된 것, 회는 잘게 썬 것”을 좋아했다란 뜻이다. 공자가 기원전 551~479년 사람이니 2,500년 전 사람도 회를 즐겨 먹은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홍만선(1643~1715)이 농예·의약·구황에 관해 저술한 『산림경제』와 의관 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에도 회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산림경제』 제3권 구급(救急)편에는 여러 가지 물고기 독에 대한 해독 방법과 생선회를 먹고 소화가 안 될 때의 응급처치 방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증보산림경제』에는 회를 먹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는데 지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껍질과 뼈를 제거하고 오직 하얀 살만을 얇게 썰어 흰 종이 위에 펴서 햇볕에 잠깐 쬐었다가 날카로운 칼로 실처럼 가늘게 썰어 사기 접시에 얇게 깐다.
이와 별도로 생강과 파를 각각 반 치가량 실처럼 가늘게 썰어 회를 놓은 접시 가운데 놓고, 또 볶은 된장을 대추알만 한 크기로 만들어서 역시 생강과 파 옆에 놓고 종지에 겨자즙을 담아 상에 올린다. 만약 여름철이면 회 접시를 얼음 쟁반에 받쳐 올린다.” 도심 한복판의 여느 횟집에서 나오는 광어회 한 접시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 것을 보면 생선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받았던 음식이다. 그런데 회를 먹는 방법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이 다르다. 중국 사람들은 날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공자 시대에는 즐겼을지 모르나 오랜 기간 생선회를 먹지 않았다. 전염병의 이유도 있었을 것이고 해안선에 비해 넓은 대륙의 특성상 유통 과정에서 상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모든 음식을 익혀 먹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선어용 생선의 중국 수출이 늘고 있다. 아마도 경제 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와 미디어 발달에 따른 영향으로 중국에서도 회를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일 거라 추측해 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대형 삼치들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숙성된 선어회를 먹는다. 살아 있는 생선을 그 자리에서 회로 먹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활어회를 선호한다. 바로 잡은 회의 쫄깃한 식감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선살은 5~10시간 숙성되면 육질이 10~15% 단단해져 씹는 식감이 더해진다. 한국 사람들의 활어회 사랑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원양과 근해 어종 간의 차이 때문에 일본과 차이가 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근거가 약하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부터 회를 즐겨 먹었다는 자료가 있고, 일본도 ‘사시미’의 역사를 무로마치시대(1336~1573)부터 보고 있으니 원양, 근해 어종 간의 차이로 보기 어렵다.
고려 중기의 문신 이규보(1168~1241)는 “붉은 생선회를 안주 삼아, 반병 술 기울이니 벌써 취한다.”라는 시를 남겼고, 고려 후기 이색(1328~1396)도 “물고기 잡아 눈발처럼 잘게 회를 쳤다.”라고 했다. 한국이나 일본의 옛 선인들의 생선살을 먹는 방법은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생선을 얇게 썰어 접시에 담아 먹었다. 그러나 근·현대에 와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에 기술 발전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겪었다. 또한 전쟁이 끝나고 극심한 빈곤과 어지러운 정치·슬롯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했다. 이런 역사적 환경과 개인의 생존이 최우선시되던 슬롯에서 우린 생명과 재산뿐만 아니라 문화와 슬롯적 가치 등과 같은 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중 하나가 ‘상호 신뢰’ 문화였다. 당장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속여서라도 먹고 살아야 했다.
시장 골목의 소상인부터 나랏일 한다는 정치인들까지 정직하게 살아가면 손해 보는 슬롯, 바보로 취급당하는 슬롯였다. 이런 상호 신뢰의 붕괴가 음식에 스며든 것이 활어회다. 얼마 전 『파닥파닥』(이대희 감독, 2012)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남녀 한 쌍이 ‘자연산 횟집’이란 허름한 간판 아래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활기차게 움직이는 물고기를 횟감으로 고른다. 그런데 횟집 주인은 그물로 그 물고기를 잡는 듯하다가 다 죽어 가는 놈을 주방에 던져 준다. 손님들은 ‘눈앞에서 코 베인’ 꼴이 된 것이다. 우리의 활어회에 대한 맹목적 사랑은 자기 눈앞에서 살아 있는 놈이 횟감으로 변해 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신선한 꽃등심을 먹고 싶다고 소를 골라서 그 자리에서 도축할 수 없고 삼겹살 집에 가서 돼지를 골라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생선은 다르다. 가게 앞 수족관에서 유유히 유영하고 있는 놈들 중에 고르기만 하면 된다. 접시에 담겨 나왔어도 아직 신경이 살아 있어 움질움질하는 것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생선의 처지에서 보면 참 무서운 장면이다.
노량진 수산 시장이 24시간 365일 불을 밝힐 수 있는 힘도 활어회에 대한 우리의 끊임없는 사랑 때문이다. 그 사랑은 우리의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지난 역사 속에서 싹튼 불신이 잉태한 ‘잘못된 사랑’이다. 한국 사람들은 죽어 있거나 손질된 물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조기와 고등어, 홍어 등과 같이 간을 하거나 숙성시켜서 먹는 생선을 빼고는 살아 있어야 제값을 한다. 여름 보양식의 대표 생선인 민어의 경우 급랭된 선어용이 15~17만 원에 거래되면, 같은 무게의 생물인 경우 50~60만 원에 거래될 정도이다. 그래서 노량진 수산 시장을 비롯하여 인천의 소래 포구, 부산의 자갈치 시장, 속초 관광 수산 시장 등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생선회의 참맛보다는 ‘신뢰’를 먹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선어회가 좋고 활어회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마블링이 잘 새겨진 참치 살과 초밥도 좋고 파닥대는 광어와 졸깃졸깃한 우럭 살도 좋다. 맛에 대해서는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왜 활어회를 맹신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필요하다.
단편적으로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활어 횟집과 선어 횟집을 찾아보면 우리의 선호도에 대한 편중도가 잘 드러난다. 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요리하는 사람, 음식을 내오는 사람을 믿고 먹었으면 한다. 타인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지고 우리 슬롯의 신뢰도가 회복된다면 활어회에 대한 인기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그럼 수족관에서 파닥파닥하는 놈들 구경하기가 힘들어질까? 그러면 좋겠다. 그만큼 우리 서로의 마음에 ‘믿음’과 ‘신뢰’가 커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