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 7일 차, 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
독일에 사는 사촌처제가 있다. 일 년에 한 번쯤 한국을 방문하는데, 한창 산티아고를 계획 중이던 2024년도에도 한국에 왔고, 가족모임을 하게 됐다. 남편인 얀은 우리가 산티아고 순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자 "우리 집 앞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걸어서 산티아고를 갈 수 있으니, 순례길은 자기 집 앞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정도의 의미로 알아 들었다.
실제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정보를 나누다 보니, '내 집 앞 순례길'이 수사(修辭, 레토릭)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스페인 옆나라인 프랑스는 물론이고 독일, 이탈리아에서도 산티아고를 향한 다양한 출발지와 순례길들이 있다고 했다. 누구나 자기 집 앞에서 순례길을 시작한다는 의미도 당연히 맞지만, 예로부터 유럽대륙 곳곳에서 실제로 산티아고를 향한 순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팜플로나 다음에 있었던 '용서의 언덕'도 우리 루트를 기준으로 생각할 게 아니었다. 유럽 각지에서 출발했다면, 피레네 산맥을 넘어 거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벌써 수백 킬로미터를 온 것이니, 용서가 가능했을 터. 맥락을 살피지 못하고 공부를 대충 하나 보니 이해가 얕았다.
위에 보이는 지도는 로스 아르코스에 있는 알베르게 벽에 걸려 있던 지도다.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다양한 순례길을 나타낸다. 그야말로 어디서나, 내 집 앞에서 순례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도에서 오른쪽 위의 고산지대를 보면, 페레네 산맥 너머 프랑스 땅으로 이어진 루트 네 개를 확인할 수 있다.
4월 마지막 날이었다. 구간 거리가 꽤 길어서 새벽에 출발했다. 새들은 원래 일찍 일어나는 건지, 골목은 새소리로 가득했다. 어제의 제비들이었을까? 눈에 보일 때는 '그래 저게 제비 울음이지'할 수 있었는데, 볼 수 없으니 소리가 제비의 것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그냥 '새'로 남으렴. 우리는 갈길이 바빠서 이만...
비아나를 지나면 나바라주를 떠나 라 리오하(La Rioja) 주에 들어선다. 라 리오하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 중 하나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와인코너에서도 병에 적힌 La Rioja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자주 보는 것이 포도밭이다. 아직 4월이라서 잎이 무성하지는 않았다. 의아해던 건,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한 번도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새벽부터 길을 걷기 시작하니 '새벽에 일하기 때문에' 놓쳤을 리는 없었다. 다른 달에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우리가 스페인을 걸었던 4월 말에서 5월까지가 딱 농한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자기 밭 궁금해서라도 어슬렁거리는 농부 하나쯤 있을 것 같은데, 전혀 보질 못했다. 순례의 막판 즈음에서야 딱 하루, 외국인 노동자들 열 명 정도가 포도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얼마나 봤다고 그들의 생활을 평가할 수 있겠냐마는... 보기로는 여기 농부들, 참 여유롭게 산다, 싶었다.
이날 코스의 중간쯤에는 비아나(Viana)는 나바라 왕국의 오래된 도시가 있다. 이곳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ía) 입구에는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가 묻혀 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성당 외부를 쓱 둘러보고는 근처 카페부터 찾았다. 햇빛에만 관심이 있지 햇빛을 가린 군주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디오게네스 같았다고나 할까? 빵과 마실 것, 그리고 쌀 곳이 우리에겐 더 소중했다.
아내가 평소 대단해하고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교통표지판이다.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서울까지 100킬로미터 남았고, 오른쪽에는 (예를 들어서) 춘천이라고 표시된 표지판은 오직 그곳 한 군데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어느 것 하나 같을 수 없는 것이 교통표지판이었다.
그러하니, 산티아고 프랑스길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616km 남은 곳은 여기 단 한 군데뿐이었을 것이다. 이 고유하고 절대적인 지점을 우리는 지났다. 부엔 까미노라는 글자에서 힘을 얻으며..
교통표지판도 그렇듯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지점에서 순례를 시작했을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에서건, 도전의식 때문이건, 남들 따라 건. 모두가 유일한 어떤 지점에서 길을 걷기 시작했을 것이다.
로그로뇨에서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묵었다. 기부제라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숙박비와 저녁값으로 내면 됐다. 일반적으로 공립 알베르게의 숙박비가 10유로 초반, 통상의 '순례자 메뉴'가 14유로 정도 했으니, 기부하는 돈도 이를 기준으로 하게 된다. 잠자리만 제공받으면 10유로, 식사까지 제공받으면 25유로를 적정선으로. 하지만 애써 기부제 알베르게를 찾아온 이유 중 하나가 '가성비'이기 때문에, 평균보다는 적은 돈을 내게 되는 게 현실이었다. 기부제의 또 다른 값을 치르러, 저녁식사 전에는 지하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가서 성당으로 들어가 '말씀의 시간'과 짧은 기도시간을 가졌다.
이 알베르게가 유명한 이유는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친교의 시간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40명 이내의 사람들이 두 줄의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자기소개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혼자서, 나와 함께 걷는 것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묘미지만,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고, 인연을 맺는 것도 이 길의 묘미다. 기부제 운영이라서 식사 준비나 설거지를 돕는 것도 이곳의 특별한 풍경이다. 대구에서 온 안쏘니 부자를 만난 것이 이 알베르게였다.
이날만 그랬는지 식사는 매우 소박했다. 나이프가 세팅돼 있길래 분명 뭔가 썰 것이 나올 줄 알았더니 끝내 나오지 않았다. 다들 목이 빠져라 배식구를 쳐다보았지만 끝내 고기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나이프를 두고 "이건 어디다 쓰라고?" 하면서 농담을 하자, 누군가가 "샐러드를 이렇게 밀어서 먹는 용도야"라고 했다. 웃음 속에서 나눈 대화라 나는 이것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고기 썰 생각은 접자,는 뜻으로.
한참 후에 어디선가 샐러드를 먹다가 깨달았다. 서양에서는 나이프가 채소를 자르거나 음식을 모아 먹을 때 쓰는 보조도구라는 것을. 작은 조각들을 긁거나 모을 때 나이프를 보조로 쓰고, 포크로 입에 가져간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상대방은 진담으로 '용법'을 가르쳐주었던 것인데 농담으로 생각하다니. 무식했던 것이다.
아내는 이태리 자수를 하는 사람이라 바느질 용품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 '도자기 골무'는 도자기라는 소재부터 마음에 들어 했다. 각 도시나 나라마다 특색을 표현한 점도 좋아했다. 프랑스에서부터 기념품 삼아 도자기 골무를 찾았고, 로그로뇨에 들어선 이 날도 기념품 가게를 찾아다녔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쇼핑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어서, 아주 특색 있는 것들만 선별에 선별을 거듭해서 골무를 샀다. 구입한 골무는 각각을 종이에 잘 싸고, 입구가 넓은 생수병에 담아서 공기가 쿠션 역할을 하도록 뚜껑을 꼭 닫아서 보관했다. 쎄요 말고 우리의 여정을 기록한 또 하나의 이정표들이었다.
2025년 4월 30일
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
Los Arcos - Logroño
구간 거리 27.4km
생장에서의 누적거리 161.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