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 8일 차, 로그로뇨 - 나헤라
공동 공간에서 잔다. 길이 멀어 아침 일찍 나서는 날이면 이렇게 복도에서 짐을 꾸린다. 자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바닥에 대충 주저앉고, 뭐가 묻을지 걱정하지 않고 바닥에 짐을 부린다. 짐들을 모두 하나의 배낭에 욱여넣은 다음 "영차". 오늘치의 무게를 지고 출발한다.
이 험한 일에 대한 근본적인 동의가 없다면 산티아고 길은 애당초 시작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몇몇 분들이 산티아고를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합류했다가 큰 실망 속에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당연하지. 관광하기 좋은 스페인 땅에 와서 이런 고생을 무엇하러 한단 말인가? 명백한 자의적 선택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이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아내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에서 '무릎이 아직 버텨줄 때 해야 할 1순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도 이런 고생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아내나 나나 서로를 설득하거나 달래야 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게 무슨 러닝도 아니고 등산도 아닌데, 잘하고 못하고가 있을까 싶었다. 러닝이라면 1km을 몇 분에 주파하느냐로 500(오공공)이니 630(육삼공 : 1km를 6분 30초로 달리는 페이스)이니 하겠고, 등산이라면 어느 산을 올랐네, 몇 번을 올랐네, 종주를 했네 마네, 100대 명산이 어떠했네 할 수 있겠지만 이건 그냥 걷기. 다 같은 줄 알았다.
하지만 걷기의 속도와 효율성 때문에 크게 서너 번 정도 좌절한 적이 있었다. 이날이 그중 하나였는데, 아래 왼쪽에 보이는 할머니가 새털처럼 가볍게 걸어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좌절했다. 저 나이가 되어도 저 속도와 경쾌함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저 할머니는 어쩌면 선출(선수출신) 아닐까?
29km를 걸어야 했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긴 여정의 날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컨디션이 좋았다. 무릎은 원활하게 돌아갔고, 첫 일주일 동안 아내의 발에 생겼던 몇 개의 물집도 점차 없어지고 있었다. 마을에 접어들면서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강가에 괜찮은 알베르게가 있다고 했는데, 앞에 보이는 두어 명의 순례객들이 경쟁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와 릴레이를 하듯이 길을 건너 다니며 엄청 속도를 냈다. 문제는, 너무 늦게 스퍼트를 했다는 것이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이미 한국인 단체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체크인 중이었고, 우리 침대는 남아있지 않았다.
차선바카라을 강구했다. 배낭은 일단 사립 알베르게 구석에 두고, 맨몸으로 500미터 떨어진 공공 알베르게를 향해 달렸다. 강둑 안쪽으로 늘어선 상점가 마당을 지나쳤는데, 거기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온 듯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옆을 빠르게 지나쳐 공립 알베르게 줄을 서는 데 성공했고, 아내를 남겨 두고 나는 다시 배낭을 찾으러 아까의 알베르게로 향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었고, 기분까지 좋아서 배낭을 찾으러 갈 때는 조깅하듯이 달려서 갔다. 마치 동네사람이 러닝을 하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강가에 나온 것처럼. 배낭을 찾아오는 길도 가벼웠다. 배낭 하나를 등에 메고 하나는 머리에 이고도 경쾌한 걸음으로 되돌아왔다. 반 정도는 뛰듯이 걸었다. 이고 진 나를 발견하자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나의 신부다.
공립 알베르게 앞 체크인 대기줄에 서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 뒤에 서셨다. 스페인 분이셨다. 우리가 들고 있던 보조 배터리를 보더니 '퀵?', '차지?' 등등의 질문을 하셨다. 준비 없이 당하기엔 너무 부족했던 스페인어 청취력이었는데... 결국은 빌려달라는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방전돼 꺼져버린 자신의 핸드폰을 우리 보조배터리로 되살렸고, 이내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셨다.
이 만남 이후, 할아버지도 '까미노 패밀리'가 되었다. 지속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사이가 되었고, 영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매번 스페인어로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었고, 우리는 웃거나 얼버무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피차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는지 큰 상관이 없는, 일방적인 선의와 안부의 전달이었다.
나헤라에 도착한 날은 5월 1일이었다. 마을 광장과 골목에 장이 섰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쇼핑하거나 게임을 하며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축제 분위기에 편승, 평소보다 올라간 텐션이 되어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강 근처에 있는 바에 들어가 평소보다 많은 음식과 술을 시켜 먹었고, 식료품 점에서 먹거리를 사 오면서 빙과류인 '칼리포'로 플렉스 하기도 했다.
파리에서부터 열흘쯤 참으며 끊기 일보 직전이었던 담배를 며칠 전부터 다시 피우게 되었다. 그래서 매번 담배가게 찾는 것이 일과가 되었는데, 나헤라에서 처음으로 바의 직원으로부터 '담배 자판기'라는 말을 배웠다. 한참 혼자 힘으로 담배가게를 찾으려다가 실패하고 바의 직원에게 손짓발짓으로 물었더니 '마끼나 데 타바코(Máquina de tabaco 담배의 기계 = 담배 자판기)'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스페인에서는 담배를 파는 전문 상점이 마을에 몇 군데 없었다. 작은 마을은 아예 없기도 했다. 우리나라처럼 아무 편의점이나 다 담배를 파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자판기가 있다는 것을 배운 후로, 음식점이나 술집 또는 건물에 있는 담배 자판기를 찾으려고 수시로 '타바코 마끼나'를 묻고 다녔다.
2025년 5월 1일
로그로뇨 - 나헤라
Logroño - Nájera
구간 거리 29.1km
생장에서의 누적거리 190.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