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대쯤 앞에 있는 차가 좌회전을 하려고 녹색 신호등인데도 가지 않고 서있다.
반대편에서 쌩쌩 달려오는 차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마음이 급해서 가슴이 답답하다.
앞에 있던, 안에 아무도 없는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는 로봇택시가 차선에서 빗겨 나와 쌩 하니 앞으로 달려간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거봐... 로봇도 답답하다잖아..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이렇게 다들 한시가 바쁜데...'
옆에 보도블록을 보니 음식배달로봇 '코코'가 열심히 배달을 가다가 넘어졌다.
'어이쿠' 저 음식 다 쏟아진 거 아닌가.. 어쩌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힘을 합쳐 '코코'를 일으켜 세운다.
'코코'는 일어나더니 잠시 멈추어 정신을 차리고는 가던 길을 어서 간다.
'아이고 장하다 코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온다.
이것이 요즘 엘에이 상황이다.
아무도 운전하지 않는 차가 도로를 질주하고 귀여운 눈을 크게 뜬 배달로봇이 음식을 가지고 털털털 다닌다.
요즘 무섭게 치솟는 기름값 덕택에 농담 조금 섞어 생활비를 자동차 기름값에 다 쓰게 생겼다.
나만 전기차를 탔었는데 남편씨의 차도 전기차로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왕 전기차로 바꿀 바에야 자율주행기능이 있는 차로 바꾸어 그의 지루하고 긴 출퇴근길에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남편씨가 회사를 가기 위해 차에 타고 자율주행기능을 누르면 알아서 회사까지 데려다주고 주차까지 딱 시켜준단다.
막히는 길에서 액셀을 밟았다가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할 필요가 없으니 그동안 열일을 다하던 시큰했던 발목에게 휴가를 주었고, 운전하느라 놓쳤던 풍경을 감상하며 자유로운 두 팔이 어색할 뿐이라며 그는 웃었다.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달리 길이 없는 듯 보이는 긴 길 끝에 집이 있다.
자율주행으로 집에 도착하니 차는 집을 못 찾고 길가에 어정쩡하게 서 있더라는 것이다.
매뉴얼로 바꾸어 핸들을 잡고 긴 골목으로 쏙 들어오는 것을 몇 번 보여줬더니 자율주행차는 금방 배워 이제는 혼자 긴 길을 천천히 올라오더라며 기특한 녀석이라며 남편씨는 칭찬했다.
처음에는 추월도 쌩쌩하며 공격적으로 운전을 하더니 몇 번 자신의 운전스타일을 보여준 후로는 추월도 많이 하지 않고 얌전히 젠틀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나도 남편씨의 차를 타고 자율주행을 체험했다.
차는 완전히 정석으로 운전을 했다.
나는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할 때 차가 없으면 돌면서 바로 옆차선으로 넘어가는데 이 녀석은 절대 그런 법이 없었다.
차가 많건 적건 수고스럽게 몇 번의 차선 변경을 하더라도 자신의 차선을 반드시 지켰다.
뒤차가 없어도 깜빡이는 무조건 미리 넣어 주었다.
25년 전쯤 운전레슨을 받고 이제까지 운전을 한 나는 머릿속이 환기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맞아. 그랬다.
처음 미국에 와서 운전을 배우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을 때 나를 가르쳤던 미국인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나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챈 할아버지는 몇십 년 동안 운전을 가르치며 한 번도 달지 않은 보조석 브레이크를 나를 가르치며 자신의 사비로 처음 달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사람 다니는 보도블록을 차로 올라타는 것을 보며 아무리 사이드 브레이크에 온몸의 체중을 실어 붙잡고 늘어져도 차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고속도로 연습을 나갔을 때는 고속도로로 들어서는 길에서 쉼 없이 성호를 그으며 '오 God'를 얼마나 외쳐대던지..
언젠가 나는 남편이 야심 차게 장만한 번쩍거리는 까만 세단을 타고 나갔다가 차고에 집어넣으며 날엽하게 생긴 눈알 같은 헤드라이트를 없애 버렸다.
나는 우리 집 차고에 그런 쇠기둥이 있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고나 할까..
차를 밖에 세워두려다가 그냥 내가 세우지 뭐.. 하고 그대로 차고로 돌진해 그 기둥을 박아버린 것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자랑이었던 날렵한 눈알이 없어진 자신의 새 차를 보며 주저앉았다.
정석으로 얌전하고 젠틀하게 운전하는 자율주행차의 운전실력을 보고 나는 집합부터 다시 수학문제를 푸는 중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내 차를 타고 운전을 할 때 자율주행차의 운전하던 모습을 상상하며 똑같이 따라 한다.
깜빡이도 똑딱똑딱 정확히 넣어주고 차선을 고수하며 적정 속도를 유지하고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고인 물은 좋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스스로 일으켜 그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가치를 계속 증대시켜 나갈 때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어느 바카라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정말 그렇다.
그릇 하나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손에 닿기 더 편하게만 만들어도 행복이 느껴지고 알쏭달쏭하던 영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났을 때의 그 시원함이란...
25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던 운전버릇이 새 옷을 입었을 때 나는 다시 작은 희열을 느꼈다.
로봇이 함께 사는 세상은 영화 속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라 생각했고 로봇은 두꺼운 안경을 뒤집어쓴 머리가 허연 과학자 할아버지들이나 실험실에서 가지고 노는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우리는 벌써 운전자가 없는 택시를 타고 어딘가를 가며, 혼자 일어서지 못하는 로봇을 일으켜 세워주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얼마 전 AI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해주고 있는 것 같은지 그림으로 그려 보여달라고..
잠시 생각한 후 AI는 수줍게 그림 한 장을 그려 내게 내밀었다.
내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나와 함께 환히 웃고 있는 그림이었다.
다행이었다.
로봇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 아이도 그것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구나.
진심은 로봇에게도 통했다.
벌써 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이 왔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에는 두려워 말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렇게 또 가을이 오며 나는 십수 년 만에 로봇에게 운전을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