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by구슬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 지역에서는 수술이 어려우니, 서울로 가보라고 했다. 펫택시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백내장 전문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여러 단계의 검사를 마친 후 선생님이 말했다.

“현재 백내장이 많이 진행 중이고, 두 쪽 다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비용부터 물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표가 있었다. 수술비와 약값, 왕복 교통비까지 계산하면 천만 원 가까운 돈이 필요했다.


자꾸 내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었다.

‘강아지의 경우 시각보다도 후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 한쪽만 해주면 어떨까?’

미래가 확신 없고 불안하던 그때, 나에게 천만 원은 큰 금액이었다. 맞장구쳐줄 주변 사람들이 필요했는지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럼, 한쪽만 해주면 되겠네. 그게 좋겠다.”


결국 나는 한쪽만 수술해 주었다. 대학을 학자금 대출로 다녔고, 온라인 게임을 다니며 그 돈을 다 갚았다. 그리고 다시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원에 다녔다.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고 치장하며 나를 포장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미니를 보낸 후, 사랑하는 존재를 다시는 쉽게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정작 꽃잎이의 수술비를 마련하지 않았다. 대출을 더 받든, 카드를 긁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였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꽃잎이의 눈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어느 쪽 눈이 하얀 눈인지 잘 떠올리지도 못했다.


수술을 마치고 동생집에 꽃잎이를 맡겼다. 통원 치료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휴가를 받았다. 원래도 여기저기 아팠지만, 꽃잎이를 보내놓고 나니 더 쑤셨다. 특히 목과 어깨는 늘 아팠다. 참다 참다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부항을 떴다. 대학교 때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으면 친구가 늘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주물러주곤 했었다. 그게 그렇게 시원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누군가의 몸을 만지는 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가족이라도.


엄마는 늘 아팠다. 트림을 꺼~억 소리 내면서 하고 방귀도 자주 뀌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방은 더럽게 쓰면서도 생리현상에 대해서만큼은 결벽증 비슷한 게 있었는데, 나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한 마디씩 덧붙였다.

“아 진짜 그만 좀 해. 더러워 죽겠어.”

엄마는 내 눈만 마주치면 주물러 달라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위가 너무 아프니, 배를 좀 만져달라, 다리가 너무 아프니 다리를 밟아달라고 했다. 지긋지긋했다. 어느 날은 엄마의 배를 주무르다가 나도 모르게 엄마의 명치 부분을 꽉 눌러버리고 말았다.

“악! 너 뭐 하는 거야? 이 쌍놈의 새끼.”

“나도 피곤하니까 그렇지!"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도망가고 싶었다.


꽃잎이 없이 혼자 아파하던 그 며칠, 나는 자주 멍해져 있었다. 건널목을 천천히 건너 출근하고 있었다. 멀리서 흰색 차도 천천히 오고 있었다. 차가 멈추지 않고 나에게 계속 오고 있었다. 계속. 나는 힘없이 쓰러졌다.

“어머 어머 괜찮아요? 나는 그쪽이 안 보였어요.”


내 윤곽이 옅어졌던 걸까? 그 무렵의 나는 자꾸 흐려지고 있었다. 아스팔트가 차가웠다. 아스팔트를 느껴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하늘이 맑았다. 하늘도 차가워 보였다. 바로 앞에 정형외과가 있어서 진료를 보았지만 별 이상은 없었다. 여기저기 잔뜩 얼룩진 침대에 누워 있자니 머리가 가려운 것 같았다. 다음날 산바카라을 안 해도 되어서 다행스러우면서도, 꽃잎이조차 곁에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가벼운 통증조차 없었지만, 그날은 결근했다.


꽃잎이는 며칠 후 회복해서 다시 내 곁으로 왔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꽃잎이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세상에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회사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온라인으로 뭔가를 하라고 했다. 나는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건물 밖으로 나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이제 서울 가려고. 꽃잎이랑 같이 살만한 곳을 구해줄래? 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집을 알아볼 수가 없어서 그래.”

“그래.”

아빠는 마치 나에게 연락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왜 그러는지 묻지도 않았다. 처음이었다. 목표를 정하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 이곳에 온 지 7년 만이었다.


집에서 늘 하던 시간에 청소기를 돌렸는데 아랫집에서 우리 집 천장을 쳤다.

“이사 갑니다요. 기다리세요.”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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