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사람들

by구슬

아빠는 혼자 조급해져 있었다.

"너 일 안 하니?"

듣기 싫었다. 더 쉬고 싶었다. 꽃잎이와 산바카라을 마치면 바카라에 파묻혀 있었다. 침대 위로, 옆으로 바카라들이 쌓였고, 읽다 잠들고, 깨어나면 다시 읽었다. 달리 계획은 없었다. 나는 괜찮았지만, 아빠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빠가 사업계획서 하나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읽어보니 엉성했다.

"아빠 이거 누가 준 거야?"

"아빠 친구가 보내주더라. 여기서 일해볼래?"

"아니."


아빠는 그 회사 이야기를 자꾸 꺼냈다. 사실 솔깃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빽으로 편히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한 번쯤은 대충 살아보고 싶었다. 울타리 안에서. 게다가 팀장 자리에 괜찮은 연봉까지 준다고 했다. 그런데도 망설여졌던 건, 그때 아빠는 성인 오락실에서 살고 있었고, 그 친구라는 사람이 그 무리의 대표 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빠를 한 번쯤은 믿어보고 싶었다. 돈도 떨어져 가고 있었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가 보니 직원 대부분이 나처럼 연줄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낙하산이라고 눈치 볼 일은 없었다. 다들 자리만 채우고 있었다. 그런 회사가 잘 될 리 없었다.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몇 달 후에는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회사는 곧이라도 망할 것 같았다.

'그러면 그렇지.'


직원들은 심드렁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회사 사정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고, 결국 2년 만에 퇴사하기로 했다.

"아빠, 나 그만두기로 했어."

"야, 대표랑 이야기해 보니까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하더라. 니가 한 얘기랑 다르던데? 좀 더 다녀보지 그러니?"

"아빠 아직도 모르겠어? 왜 내 말은 안 믿고 그 사람 말만 믿어? 이 회사 이제 못 살아나.

아빠는 딸 월급이 밀리고 있는데 내 걱정은 안 하고 계속 그 사람 밑에서 일하라는 거야?"


나는 그날 이후 아빠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도움을 받는 것에 서툴렀다. 그래서 아빠가 일자리를 소개했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혹시나 아빠가 나를 또 실망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포함해서. 결국 아빠에게 남아 있던 일말의 기대마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아빠의 유일한 친구였던 그 대표마저 나 때문에 잃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빠가 외톨이가 될까 봐. 아직도 아빠는 그 대표와 잘 지낸다.


그 이후로 3년간 백수였다. 나는 멈춰 있었다. 나를 불러는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용케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꽃잎이는 노령견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즈음 지역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함께 들은 사람들과 작품을 추려 바카라도 냈다. 작품 중에는 아빠를 생각하며 쓴 시도 있었다. 일을 오래 쉬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때가 존재한다는 것을.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갯벌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발을 떼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드는 곳.


아빠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명예퇴직을 당하고 여러 온라인 게임을 전전하다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나중에는 집에만 있었다.


아래 시는 글쓰기 수업에서 주유소 바람 풍선을 보고 쓴 시다.




바람 풍선


조개 집 안에서 예쁜 진주를 낳고 싶었다.

그렇지 못해 스스로 거인이 되기로 했다.

거인은 허공에 팔다리를 휘적대며 춤을 추었다.

추고 또 춰도 될 수가 없었다.


나만 몰랐던 구멍이 있었다.

어느샌가 주저앉은 풍선 옆에

또 다른 풍선이 납작하게 누워있다.


당신도 춤을 췄었군요, 열심히.



나는 그 바카라을 보여줄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아빠한테 메시지로 이 시를 보냈다. 얼마 뒤 아빠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야, 너 면접 보러 다니는 게 아니고, 쓸데없이 글이나 쓰러 다닌 거냐?"

울컥했다.

"너는 우리 집 장남이나 마찬가지인데, 니가 대바카라 없이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자주 듣던 말이었다. 니가 우리 집 장남이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아빠, 내가 언제 장남 한댔어? 나는 여자야. 왜 아빠 마음대로 나를 장남으로 정해?”

아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왼쪽 목이 굳어 토할 것 같은 두통에 시달리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늘 보호받고 싶었다. 그 사실을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았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강하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날 터져 나온 원망은 사실, 사십이 넘은 딸이 노인이 된 아빠에게 뒤늦게 보호를 구하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나는 굽은 나무처럼 자라났다. 왼쪽 어깨는 앞으로 말려 있고 몸은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허벅지와 몸통 사이가 만든 동그란 공간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은 뜨거웠다. 나는 오랫동안 그 뜨거움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그 뜨거움이 태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심은 서늘하다. 그 안에는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있다. 아이의 주위를 뜨거운 바람이 쉼 없이 돈다. 그 바람을 따라가 보았다. 그 태풍은 이미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나를 집어삼킬 만큼 커져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남자였다. 어느 날 나의 단짝이 담임 선생님 볼에 뽀뽀했다. 나도 따라 했다. 며칠 뒤 교실에 나 혼자 남아 있게 되었다. 그 남자가 슬그머니 내 뒤로 오더니 내 가슴을 주물렀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남자는 몇 번씩이나 그 행동을 되풀이했다. 그 남자는 내 단짝도 만졌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다. 그냥 그런 확신이 든다. 그 친구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늘 볼 뽀뽀를 했다. 우리 집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나는 그냥 그 친구를 따라 했을 뿐이다. 왠지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면 나도 예쁨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모습이 싫었다. 우스꽝스러웠다. 가슴은 남들보다 빨리 자랐고, 머리는 커트 머리였다. 엄마는 목욕탕에 데려가 순식간에 내 머리를 쳐버렸다. 숱이 많아, 묶어주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내 단짝은 예뻤다. 찰랑이는 긴 머리에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고 다니던 그 친구 옆에 서면 나는 볼품없이 느껴지곤 했다. 대신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좋은 아이가 되려고 애를 썼다. 칭찬을 받으면 내가 특별해지는 것 같았고, 사랑을 받는 것 같았다. 어쩌면 힘을 얻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힘을 빌려서라도 안전해지고 싶은 마음. 더 이상 혼자 불안에 떨고 싶지 않은 마음. 다만 어린 내가 선생님에게 기대했던 건 보호자의 사랑과 돌봄이었고, 그 남자가 나에게 했던 일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집에서 남자 친구랑 소설을 영화화한 <연인>을 본 적이 있다. 재미없을 거 같다고 짜증 부리던 그가 다 보고 나더니 인생 영화라며 흥분했다. 사실 그는 영화 속 소녀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녀가 자신을 지켜줄 것 같은 남자에게 끌렸듯, 그는 활발하고 단단해 보이는 나에게 끌렸다. 위로 누나가 넷 있었고, 어렸을 때 누나 두 명과 함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적이 있던 그였다. 같이 영화를 보던 그즈음, 그는 내가 생각만큼 강한 여자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두 팔을 머리 뒤에 받치고 누워서는 눈을 끔뻑거리며 영화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를 보고 있자니 슬퍼졌다. 그도 나도, 기대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었다.


꽃잎이와 나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끈적한 점액을 분비하며 느리게 걸어가는 달팽이 같았다. 봉인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더위 속에서, 오랫동안 발효된 기억들이 자꾸 질문을 던졌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철로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꽃잎아, 이제 집에 가자. 엄마 너무 더워. 힘들어.”

매미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워, 오히려 고요했다.

꽃잎이는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서더니 꼼짝 안 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제발 가자.”


화를 꾹 참으며 꽃잎이를 재촉했다. 꽃잎이는 산에 가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산으로 진입하는 삼거리에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꽃잎이 목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꽃잎이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라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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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그래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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