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나가는 연습

by구슬

아빠가 구해놓은 집은 총 3층 건물에 있는 2층, 202호였다. 1층에는 왼쪽부터 마라탕집, 세탁소, 떡볶이집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떡볶이집 옆으로 2, 3층 사람들이 드나드는 현관이 있었고, 우리 집만 마라탕집 옆에 있는 주차장 뒤쪽 계단을 썼다. 택배기사들은 늘 떡볶이집 옆 현관으로 올라가 202호 어디 있느냐고 전화했다. 그러니까 202호는 없는 집 같았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길에서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데다가,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꽃잎이와 드나들 수 있어 좋았다. 엘리베이터 사건을 들은 아빠는 이 점을 제일 고려해서 집을 골랐다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무래도 이 점만 고려한 것 같았다.


아빠 집과는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꽃잎이를 혼자 두어야 할 때를 대비해서 일부러 가까운 곳으로 구한 집이었다. 동물병원이 여러 군데 있었다. 카페도, 병원도, 은행도 많았다. 숨통이 트였다. 대중교통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그런데 세상은 멈춰 있었다.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답답해서 마스크를 벗고 꽃잎이와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마스크를 안 썼다고 흘끔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퇴사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코로나가 올 줄이야. '그래! 여긴 인큐베이터라고 생각하자. 좀 쉬자.'


그래 놓고 나는 또 마음이 급해졌다. 논문 마무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우선 인터넷 연결부터 서둘렀다. 생각보다 논문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퇴사, 이사까지 정신이 없는 데다가 코로나 때문에 지도 교수님을 제대로 뵐 수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내 머리가 뿌옇게 돼서 논문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찌 됐든 우선 인터넷 개통 신청부터 급히 했다. 전에 쓰던 사람이 인터넷 선을 뺀 흔적이 방 창문 오른쪽 위 모서리의 깨진 틈으로 보였다. 이번 기사님도 그곳으로 선을 뺐다.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휴대폰도 모두 잘 잡혔다.


한숨 돌리고 이삿짐을 마저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빠지직,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꽃잎이가 먼저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따라가 보니,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깨진 창밖으로 대형 트럭이 방금 연결한 인터넷 선을 달고 함께 가고 있었다. 마침, 이사를 도우러 오고 있는 아빠와 동생이 보였다.

"아빠 저 트럭 잡아 줘!"

나는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 소리를 질렀다. SOS 구조 요청. 동생은 또 시작이라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트럭을 잡아서 유리창 수리비 5만 원을 받았다. 유리창을 갈아 끼우면서 알았다. 우리 집은 약간 오르막길에 있었고, 202호 창만 이중창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난 내내 배달 오토바이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아빠는 정말 꽃잎이만 생각하고 집을 고른 모양이었다.


마음은 빨리빨리 이삿짐도 정리하고 논문도 쓰고 해야 하는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써지지 않는 논문을 붙들고 있는 딸에게 아빠는 떡볶이와 김밥을, 어느 날은 만두와 돈가스를, 또 어떤 날은 냉면을 사다 주었다. 아빠의 눈에 논문 쓰는 딸이 좋았던 거다.


나는 오랫동안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중학교 때였다. 나는 학생회장에 당선이 됐다. 아빠는 평소처럼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나에게 윽박질렀다.

"도대체 그런 걸 괜히 왜 하고 오는 거야?"

엄마는 원래 나서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들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보다 더 크게 울었다.

"아니, 엄마. 축하부터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옆에 있던 동생도 괜히 따라 울었다. 내가 학생회장이 되어 돌아온 그날 우리 집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미니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그날따라 안아달라고 난리였다.


어느 날, 학생회 담당 선생님이 슬쩍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아니, 학생회장 어머니가 어떻게 학교 한 번을 안 오시니?"

그날 이후 엄마는 장어집에서 선생님들 단체 회식을 주선했다. 아빠는 아직도 가끔 그 무렵의 이야기를 한다.

"야 그때 그래도 우리 집 거금 썼어. 내가 너희 학교 등나무 밑에 앉아서 경비아저씨랑 한참 이야기하고 그랬었어."

"왜 아빠가 경비아저씨랑 얘기를 해?"

"그런 게 있어 인마. 내가 학생회장 아빠라고 하면 경비아저씨가 아이고 그러냐고 그랬었어."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IMF 시절이었다. 영업일만 해왔던 아빠가 바카라상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감사실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엄마는 그래도 애들 대학도 보내고 해야 하니까 꾹 참고 다니라고 했지만 얼마 후 아빠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빠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학생회장의 아빠였다.


논문을 쓰는 시간 외에는 꽃잎이와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산바카라을 다녔다. 서울에는 강아지들이 참 많았다. 짖는 개도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꽃잎이가 제일 많이 짖기는 했지만. 강아지를 만나면 꽃잎이가 하도 짖어대서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거 입마개를 좀 씌워요."

꽃잎이에게는 슬롯화가 절실했다.


사실 서울로 이사 오기 전에 호기롭게 잭 러셀 테리어 강아지 모임을 간 적이 있었다. 모임은 야외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경품을 건 게임도 하고 보호자들끼리 친목도 도모하고, 정보도 교류했다. 점박이들이 운동장을 우르르 다니는 모습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꽃잎이도 저 무리에 섞여 잘 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롯성이 부족했던 꽃잎이는 역시나 어울리지 못하고 내 곁에 줄곧 머물면서 짖기만 했다.


자유시간이었다. 한 보호자가 운동장 한가운데로 나와서 인형을 공중에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강아지들과 놀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무심코 보고 있었는데, 모임장이 그 장면을 보더니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거 흔들지 마세요!"

그 말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아이들이 인형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러더니 서로 그 인형을 물겠다고 달려드는 통에 운동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그 인형을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꽃잎이었다. 분명 내 근처에 있었는데 어느샌가 꽃잎이가 선두로 달리고 있었다. 이십여 마리의 개들이 삼각편대를 이루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무리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경험 많은 남자 보호자가 나서서 그 사냥놀이를 제지하고 정리했다. 모임을 주선한 사람이 말했다. "절대 인형 같은 거 흔드시면 안 됩니다. 얘네들 사냥 본능들이 있어서 사고 나요."


너무 놀라서 눈물이 핑 돌았다. 꽃잎이의 얼굴에 상처가 나 있었다. 다른 개들도 조금씩 다쳤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꽃잎이의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우리는 아예 운동장 밖을 나와 둘이 조용한 곳에서 산바카라했다. 모임에 왔지만 모임에 끼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괜히 우리 때문에 이 모임이 어지러워진 것만 같았다. 꽃잎이와 내가 빠지니 운동장이 다시 화목해 보였다.


운동장 주변을 하염없이 걷다가 꽃잎이가 진정되자 그 모임에 다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꽃잎이를 두고 이런저런 조언들이 오고 갔다. 집으로 돌아온 꽃잎이는 종일 잠만 잤다. 다음날 산바카라하러 가지도 않았다.


언제까지고 숨어 지낼 수만은 없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서울에는 카페가 참 많았다. 특히 집 근처에 큰 곰 인형들로 가득한 예쁜 카페가 눈에 띄었다. 곰들이 서로 다른 포즈로 우리를 보며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창밖으로 경쾌한 샹송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꽃잎이와 그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왠지 들어가도 될 거 같았다.

"혹시 강아지 들어가도 되나요?"

"테이크아웃은 가능하세요. 죄송하지만 매장에 쿠키가 진열되어 있어서요."

쿠키에 털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들어오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곰돌이 모양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쿠키들이 별도의 포장 없이 놓여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혹시 손님이 들어오지는 않는지, 강아지가 지나가지는 않는지 목줄을 꽉 쥔 채 주변을 살피며 커피가 어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와중에 바닥에 있던 꽃잎이는 나보다도 큰 곰을 집으로 끌고 가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드디어 커피가 나왔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나는 얼른 커피를 받아 나왔다. 우리의 첫 번째 도전은 아무도 모르게 성공했다.


매일매일 그 카페에 갔다. 처음에는 테이크아웃 주문만, 나중에는 야외 자리, 더 후에는 실내 자리에서 5분, 10분 그렇게 시간을 늘려갔다. 나는 그곳을 곰돌이 카페라고 불렀다.


곰돌이 카페 사장님은 나중에는 꽃잎이를 위해 간식을 만들어주고 의자 위에 담요도 깔아주었다. 꽃잎이의 체류시간이 길어지자, 쿠키까지 개별 포장해 진열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짖었다. 짖으면 바로 꽃잎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지만, 드나드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곰돌이 카페 사장님의 환대를 계기로 다른 카페들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동네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꽃잎이와 함께 사람과 개들을 만나는 연습을 했다. 꽃잎이와 카페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논문과는 점점 멀어졌다. 그동안 쏟아부은 학비와 시간을 생각하면 쉽게 놓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 문제는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나는 완전한 백수가 되어 꽃잎이와 카페만 다니고 있었다.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학위가 없다. 아마 그 학위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우리 위로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왜 미술 시간에 붓을 찍어서 나뭇잎을 표현하라고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잎새가 흔들거리고, 그 사이로 반짝이는 햇볕이 들어왔다. 꽃잎이의 귀도 바람에 살랑거리며 내 코를 간지럽혔다. 아무래도 좋았다. 시에서, 소설에서 수없이 읽었던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아침을 곰돌이 카페 샌드위치로 시작해, 우리는 산으로, 강으로, 그리고 카페로 다녔다. 우리가 카페 체류 시간 30분을 달성했을 때쯤, 곰돌이 카페는 폐업했고 우리는 마지막 날 폴라로이드 사진을 함께 찍었다. 지금도 그 사진들이 냉장고에 붙어 있다. 그곳은 이제 미술학원이다. 지나갈 때마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나와 꽃잎이를 처음으로 반겨준 곳. 아직도 많이 감사하다.

곰돌이.jpg카페의 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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