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요리와 식재료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어느 여행지를 가던 마트나 시장은 꼭 가보는 편이다.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 나는 산타 카타리나 시장으로 왔다. 이곳은 나에게 광장과는 다른 의미의 영감을 주는 곳이다.
카타리나 시장의 외관은 상당히 독특했다. 곡선 문양과 마치 성을 연상시키는 벽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관광지라기보다는 나에게는 관광지 이상의 거대한 식재료 구경거리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과일가게였다. 과일가게에는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도 있었지만, 보기 힘든 과일도 있었다.
그중 가장 궁금한 과일은 '납작 복숭아'였다. 납작 복숭아는 유럽에서만 판매한다고 하길래 다른 건 몰라도 납작 복숭아만큼은 꼭 먹어보고 싶었다.
먹기 편하게 잘라 작은 컵에 담아 파는 과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잘라놓은 과일에 납작 복숭아는 없었다.
오늘 앞으로의 일정이 빡빡하게 들어섰지만 그래도 여기서 납작 복숭아를 사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을 못 먹어볼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 일정동안 내내 들고 다녀야 하는 피로를 감수하고서라도 납작 복숭아를 구매하였다.
'이따가 숙소에 가서 먹어야지!'
수많은 과일이 있었고, 모든 과일을 다 못 먹어 봐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양한 과일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육가공품을 파는 가게가 나왔다.
햄처럼 보이는 것부터 소시지, 하몽까지 여러 종류의 고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알던 하몽과 모습이 달랐다. 어제 2차 술안주로 먹어봤던 하몽은 이미 얇게 슬라이스 되어 있었지만, 시장에서는 돼지다리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하몽이 매달려 있었다.
다리를 통째로 가공한 뒤 발목 부분에 끈을 묶어 천장에 주렁주렁 걸어놓은 모습이었다.
‘아, 하몽이 진짜 이렇게 만드는 거였구나.’
너무 신기해하니 가게 사장님이 나를 보고는 하몽을 써는 칼로 얇게 포를 떠주고는 먹어보라고 주셨다.
어제 먹은 하몽도 맛있었지만 가게 사장님이 썰어주신 하몽은 훨씬 부드럽고 육향도 진했다.
솔직히 한 다리를 통째로 한국에 가져가고 싶었다. 집에 걸어놓고 조금씩 잘라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하몽 한 다리를 들고 귀국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했다...
(한국에도 축산물을 가져갈 수 있었으면...)
그리고 또 하나 내 눈을 잡아끄는 가게가 있었다.
샤프란이었다. 샤프란이라는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향신료였고, 특히 굉장히 비싼 향신료로 유명했다.
빠에야 같은 음식에도 사용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샤프란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거 실고추 아니야?’ 가느다란 빨간색 실 같은 것이 작은 용기에 담겨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의 모습치고는 너무 소박했다.
이 작은 빨간 실 같은 것을 밥을 지을 때 넣으면 노란색이 나고 특유의 향이 더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가격을 봤다. 2g에 9.75유로. 정말 비싸다고 느꼈고, 여러 번 살지 말지 고민 많이 하였다.
하지만 결국 비쌌지만 이런 식재료를 언제 또 직접 사보겠나 싶었고, 그렇게 나는 스페인에서 처음 본 샤프란 2g을 손에 넣었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는 Conesa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파니니 같은 빵 사이에 소시지와 구운 채소, 치즈 같은 것이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여기에 사용되는 소시지는 카탈루냐식 소시지라고 하길래 내부를 열어봤다.
햄과 소시지의 중간 정도 되는 비주얼이었다. 그리고 안에는 파프리카, 피망, 몇몇의 야채가 들어있었다.
빵은 바게트와 같이 바삭했고, 소시지는 뽀득하니 맛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그냥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아마도 많이 부실한 서브웨이 느낌이었다.
그리고 카탈루냐 소시지는 솔직히 그냥 우리나라 고급진 후랑크 소시지가 더 맛있던 것 같다...
그렇게 파니니 같은 샌드위치는 다 먹어가던 찰나,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나는 시장 안에 화장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였고, 카타리나 시장으로 가기로 하였다.
시장 안에서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겨우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입구에 기계가 하나 있었고 그 앞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50 cts.
서양권 사람들은 화장실을 사용할 때 돈 내고 사용한다는 얘기는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내게 닥치니 너무 돈이 아까웠다.
‘화장실 가는데 돈을 내라고?’
차라리 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애석하게도 작은 문제였다.
미치도록 아까웠지만 별도로 선택지가 없었다. 50센트를 아끼겠다고 바지에 지릴 수는 없었다.
결국 돈을 냈다. 화장실을 이용한 뒤, 손을 씻던 중 다시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50센트까지 냈는데 볼일 본 뒤에 손만 씻고 나간다고?’
결국 나는 세수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50센트가 뭐 그렇게 아까웠나 싶지만, 당시에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돈을 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반면 시장에서 산 샤프란은 한국까지 고이 가져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막상 쓰려고 하니 아까웠다. 2g밖에 없었고, 내가 처음 사본 샤프란이기도 했다.
평범한 날 밥에 넣어버리기보다는 뭔가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때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꼈다. 다음에 써야지. 조금 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때 써야지.
그렇게 계속 미뤘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내 샤프란은 없어졌다.
무슨 향이 나는지도 결국 경험조차 못했다.
먹었으면 없어졌을 텐데, 아껴도 없어졌다.
결국 나는 스페인에서 처음 산 샤프란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아끼지 말고 그냥 빠에야라도 한 번 만들어볼 걸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였다.
먹었으면 최소한 맛은 알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