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못 생긴 사람이 많아

아들의 신검 후기

by피어라

지난 주 큰아들이 신검을 다녀왔습니다. 병역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병역판정검사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다 거쳐갈 관문이자 통과의례이고, 아들을 키우면 필연적으로 맞이할 순간이 제게도 왔습니다. 요즘에는 복무기간도 짧고 예전처럼 군대 문화가 엄하지 않다해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대학 새내기가 되어 공부는 팽개친 채 게임만 하고 노는 백수 같던 아들도 신검날이 아침에는 입매가 살짝 굳어있더군요. ‘군대’라는 이름은 충분히 그런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체검사 받고 준비한 서류제출하고 오는 일이니 어려운 것도 아니고 복잡한 것도 아니건만 괜스레 긴장하게 만듭니다.


아들이 집을 나서면서부터 계속 카톡 알람이 울렸습니다. 업무중이지만 신경이 쓰여 확인을 안할 수가 없더군요. 무슨 생중계인줄 알았습니다. 계단까지 줄 서 있다, 사람들이 많다, 이제 어디로 간다, 서류를 내는데 기다려야한단다…그러다 톡이 뚝 끊기더군요. 귀찮은 알람이 잠잠하니 좋기도 한데, 계속 울리던 알람이 조용하니 또 궁금해집니다. 잘 하겠지. 그렇게 믿고 일에 집중하는 사이 오후가 지났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오며 오늘 있던 일을 실컷 쏟아냅니다. 항목별 결과부터 판정내역을 보여주며 얘기하는데, 수학여행 다녀온 고등학생인줄 알았습니다. 이것저것 한참을 이야기하는 모양새를 보니 꽤나 떨었던 것 같습니다. 압니다. 국방의 의무에 대한 사명감을 느꼈다거나 성인으로서의 바카라무, 남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 등등을 실감했다는 소감을 바란 건 엄마의 지나친 기대였겠죠. 간식 먹은 얘기로 들어가려길래 얼른 막았습니다. 이럴땐 직구를 던져야합니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야?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고 어떤 걸 느꼈어?”

“음….있지, 세상에는 못생긴 사람이 정말 많아.”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감상이랍니까? 검사하러 모여든 또래 남자아이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요. 독특한 시각이라고 좋아해야하나요, 철이 없다 할까요. 살짝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이해했습니다. 아들은 아마도 처음 보았을 겁니다. 비균질하게 섞인 남자들의 대집단을. 그러니까 못생긴 사람이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은 굳은 얼굴에 대한 아들의 표현인 겁니다. 이제 막 성인이된 아들에겐 타인의 세계를 스치듯 들여다보는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겠지요. 지금껏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온 아이의 뽀얀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 보다 먼저 울타리 너머의 사람을 만났던 까슬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거의 30년 전 군대에 들어간 남동생의 얼굴 말입니다.


남동생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고만고만한 동네의 고만고만한 남중과 남고를 나왔습니다. 제가 그랬듯이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주로 교회친구들과 교류했고 대학도 무던한 학과에 들어가 생활수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무리들과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일탈이나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성실한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안전한 울타리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살았지요. 그리고 성인이 되어 남들처럼 군대라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은 나이, 직업, 학력, 지역과 무관하게 오로지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묶여진 집단이었습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 각기 다른 성장과정과 생활환경을 지닌 남자들, 다른 배경과 경제력, 다른 상식과 도덕을 지닌 사람들 사이로, 동생은 내던져진 겁니다. 이해와 존중 대신에 명령과 복종이 있는 곳에 말입니다.


엄마와 함께 잔뜩 음식을 해들고 간 첫 면회 때, 동생은 31가지 맛이 있는 아이스크림을 사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평소 그리 좋아하던 간식이 아니라 의아해했지만 군대에 있는 동생이 먹고 싶다고 하니 당연히 포장해서 싸들고 갔지요. 음식을 펼쳐놓고 기다리니 곧 동생이 나타났습니다. 자기보다 더 앳된 얼굴을 한 낯선 청년과 함께였습니다. 간단히 소개한 후 같이 음식을 먹는데, 밥을 먹기도 전에 동생이 그 청년에서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건네주는 겁니다. 청년은 조금 주저하다 어색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 통을 거의 비울정도로 열심히 먹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이게 배스킨라빈스군요…’라고 말한 건, 아마 저만 들었을 겁니다. 나중에 동생이 들려주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과 할머니를 부양하는 소년가장이라고. 지금껏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다 들어와서 제 걱정은 제쳐두고 늘 두고온 가족 걱정만 한다고. 어느 날 티비에서 아이스크림 광고를 보더니 자기에게 ‘먹어보셨습니까? 어떤 맛입니까?’ 하고 웃으며 물어보더라고.


지금껏 안온하게 살았던 삶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올만큼의 이야기들을 만나고 동생은 많이 겸손해졌습니다. 살떨리는 폭력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는 법도 배우고, 자신의 연민을 공감의 정서로 키우는 법도 익혀나갔습니다. 자신의 울타리 너머의 세계를 만나는 동안 병장으로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동생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게 다이긴 합니다만, 군대라는 곳이 제가 생각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곳만은 아니더군요. 그곳에는 권력과 야망을 쫓는 군인이나 유연하지 못한 군인만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군대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어요. 그 다층다양한 결을 아들 나름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처음으로 온갖 이력을 지닌 사람들의 익숙치 않은 관계를 ‘못생긴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고 말한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들의 짧은 표현력에 대한 안타까움은 속에 묻어두고 괜히 너스레를 떨었답니다.

- 그래, 잘생긴 남자가 드물다는 거는 엄마가 너무 잘 알지. 아이돌을 왜 좋아하겠니, 아니 그 전에 그러니까 너는 엄마아빠가 최선을 다해서 요만큼이라도 만들어 놓은걸 감사해야한다.

뭐가 멎쩍었는지 아들은 슬몃 웃기만했습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에 걸려있는 것처럼.


30여 년 전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다 흩어놓을 만큼 바람이 날카롭던 어느 날, 남동생이 입대했습니다. 메마른 운동장에서 한 무더기의 청년들과 같이 찬바람을 맞으며 뛰어 들어가는 남동생을 보고 한참 훌쩍였습니다. 정작 옆에 선 엄마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바람을 뚫고 많은 것을 겪어내어 돌아온 남동생처럼 아들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나오겠지요. 그때 아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싶습니다. 네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저 못생기기만 한 사람들이었냐고. 혹시 그 못생긴 사람들 안에서 아름다운 부분들을 찾지 않았냐고. 아들이 들려줄 답을 지금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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