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에서 두 발이 되다

신검 받은 그 아들 맞습니다

by피어라


대학교 1학년 초가을, 한 학년 위의 선배가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왔다. ‘로드레이서’라고 했다. 이름도 멋지지만 생긴 건 더 끝내줬다. 높이 솟은 안장, 날씬하고 탄탄해 보이는 바퀴, 그 안에서 요염하게 반짝이는 휠에 사로잡혔다. 무엇보다 산양의 뿔처럼 멋지게 휘어진 핸들의 곡선이 눈부셨다. 나도 선배처럼 엉덩이를 치켜들고 저 핸들을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나를 포함 몇몇이 한 번만 타보게 해달라고 졸라댔고, 새 자전거를 자랑만 하고 싶었던 선배는 마지못해 핸들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자전거에 올라탔다.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상체를 앞으로 숙여 핸들을 잡았다. 페달을 밟자 가볍게 미끄러지듯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바람이 밀어주는 것 같았다. 지금껏 내가 타던 자전거와 속도감이 달랐다. 쾌감과 두려움이 맞붙은 전기가 온몸에 흘렀다. 목덜미를 훑어가는 바람을 즐기며 순식간에 정문까지 달려갔고, 뒤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선배와 친구들을 향해 멋있게 돌아서던 순간, 자전거가 기우뚱했다. 달리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충분히 회전하지 못한 채, 그대로 길가 경계석을 들이받았다. 비명과 함께 친구들이 달려왔다. 빛나던 선배의 새 자전거는 앞바퀴가 통째로 우그러진 채 길가에 뒹굴었고, 나는 공중에 떴다 얼굴부터 바닥에 쳐 박혔다. 괜찮다고 말하려는 입 속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앞니가 부러진 것이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하늘이 노래진다고 하던데, 바닥에 누워서 바라 본 하늘은 기가 막히게 푸르렀고, 자전거 주인의 얼굴만 노래져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큰아이가 여섯 살이 되자마자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사주었다. 자신은 혼자 커브를 못 돌아 겁을 내면서 어린 아들에게 덜컥 자전거부터 사주다니. 육아스트레스로 인한 단순 변덕인지 서툰 엄마 대신 능숙하게 잘 타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이르다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덜컥 질다. 어쩌면 스무 살 이후 접어놓았던 자전거의 매력을 아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온 몸으로 다가오는 질주의 쾌감, 자기 다리로 움직이는 경건한 피로감,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나아가야한다는 묵묵한 깨달음 같은 것들 말이다.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향한 욕심이 안전에 대한 걱정을 앞선 순간, 아이는 인생 첫 네발자전거를 만났다


자신의 첫 자전거는 아이가 직접 골랐다. 남자아이가 좋아할 법한 파란색이나 초록색 자전거들이 많았지만 큰아이는 딸기우유같은 연핑크색 자전거를 골랐다. 앞에는 안장과 같이 조금 진한 분홍색 바구니가 달리고 뒷바퀴 양 옆으로 조그만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였다. 처음 자전거를 타던 날, 큰아이는 자기 머리통만한 바구니에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득 태우고 활짝 웃으며 핸들을 꼭 쥐었다. 겨우 여섯 살 이었지만, 큰아이는 어디든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그 옆에서 나는 두 살이 된 작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걸었다. 자전거와 유모차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열심히 다니길 1년 여. 처음에는 내 뒤에서 나를 쫓아오던 아이가 제법 자신감이 붙으면서 내 앞에서 달리게 되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보조바퀴의 흔들림을 따라 온 몸을 양 옆으로 기울이며 달리던 일곱 살 남자아이. 뒤에서 따라오는 엄마를 믿고 낑낑대며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고 거침없이 내리막을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늦여름,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여느 날처럼 세 살배기 동생이 탄 유모차를 밀며 뛰다시피 아이를 쫒아가는 데, 큰 애 자전거의 보조바퀴 나사가 풀려 덜컹거리는 게 보였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길을 올라가고 있었고, 놀란 나는 아이가 위험할까봐 걸음을 서두르는데, 그만 바퀴가 떨어져나갔다. 깜짝 놀라 아이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아이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처음부터 보조바퀴가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똑바로 나가고 있었다. 야무지게 페달을 밟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도와 자랑스러움, 뿌듯함과 허전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인도에 뒹구는 보조바퀴를 집어들었다. 동그란 플라스틱은 거칠게 닳아 낡고 가벼워져있었다. 이 조그만 바퀴가 그간 우리아들을 지탱하고 있었구나, 이제부터 아이는 혼자 길을 걸어가겠구나, 쓸모를 다 한 플라스틱 바퀴를 매만지며 그만 청승맞게 거리 한 가운데서 울고만 싶어졌다.


그렇게 큰 아이는 네 발에서 두 발의 세계로, 훨씬 빠르고 자유로운 세계, 혼자 달려가는 세계로 들어섰다. 최초의 분홍색 네발 자전거 이후로 여러 대의 자전거를 거쳐, 이제 큰아이는 내 발은 닿지도 않게 안장을 높이고 얇고 커다란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탄다. 얄궂게도 엄마의 앞니를 부러트렸던 바로 그 로드레이서다. "네 무게를 감당하기엔 바퀴가 너무 얇지 않니? 자전거 학대야"라고 깔깔대며 놀리기도 하지만 아들은 도로를 매끄럽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로드레이서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앞서 달리는 아이를 조금이라도 따라가고 싶어 자전거 연습을 시작했다. 무릎관절이 고장나기 전에 아이와 보조를 맞추며 응원하고 싶어서.


지금은 가끔 근처 공원으로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산바카라을 나선다. 역시 큰 아이가 제일 앞에 서고 그 뒤로는 작은 아이가 바짝 따라 붙어 달린다. 나는 남편과 함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간다.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아이의 조그맣던 등이 이제는 아빠보다 커다랗다. 아이의 등을 보며 뒤따르는 이 길을 앞으로 얼마나 더 달릴 수 있을까? 이 짧은 순간의 질주가 고요하고 눈물겨워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올려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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