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말고 설탕

by피어라

설날, 추모공원 가는 길은 그리운 이를 찾는 가족들로 꽉 차 있었다. 차들은 선생님 따라 견학 나선 학생들처럼 앞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도로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었고, 기다리기 힘든 사람들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머님 장례를 치르고 부쩍 기력이 쇠해지셨는지 아버님은 예전 같지 않은 속도로 언덕길을 오르셨다. 핸드폰 없이는 다섯발자국 이상 걷지 않는 사춘기 큰아들은 느릿느릿 발을 끌며 그 뒤를 따랐다. 가족 모두 조금은 무겁고, 무겁기보다 그립고, 그립기보다 아린 마음으로 말없이 걷고 있었다.


평소라면 심장이 두 개인 것처럼 뛰어댔을 작은 아이가 웬일인지 짜증을 부리며 업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힘들다며 투덜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어른들 눈치가 보여 아이에게 날 선 소리를 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달큰한 향기가 날아들었다. 한참 올라가야 할 고개 위, 연한 분홍빛 구름이 몽실몽실 떠다녔다. 작은 아이를 비롯한 주변 어린아이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엄마, 솜사탕!”


벚꽃이 피었나 싶을 만큼 화사한 솜사탕이 마른 가지들 사이로 살랑이고 있었다. 동시에 어둡고 칙칙한 내 얼굴에도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단숨에 언덕을 올라 아들에게 커다란 솜사탕을 하나 쥐어주었다. 나는 그저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도 혈관에 당분이 흐르기라도 한 듯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에 닿으면 녹아 없어지는 솜사탕처럼 날카롭고 아린 마음도 사르르 사라진걸까? 무엇보다 향기가, 달달한 솜사탕 냄새가 온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덕분에 칭얼대던 작은 아이는 입가랑 손가에 지저분하게 솜사탕을 묻힌 채 추모공원까지 씩씩하게 걸어갔다. 차갑고 하얀 어머니의 유골함까지.


어머니를 뵙고 내려올 때까지도 아저씨는 솜사탕을 만들고 계셨다. 아까보다 더 많은 꼬마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솜사탕 기계 옆에 모여 있었다. 작은 설탕 알갱이가 뜨거운 열에 녹아 실처럼 가늘고 길어지면 설탕실이 흩날리기 시작하고, 잽싸게 나무젓가락을 휘저으면 어느새 퐁신한 솜사탕이 만들어진다. 타닷타닷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설탕을 감아내는 아저씨의 손길이 단순하면서 유려하다. 군더더기 없는 아저씨의 손놀림을 따라 내 마음도 녹여내여 다시 만들고 싶어졌다.


언덕을 내려가는 내내 자꾸만 눈앞에서 솜사탕이 부풀어 올라 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내 몫의 솜사탕을 사올걸. '지금이라도 다녀올까?'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며 후회했다. 다음에는 꼭 온 가족 수만큼 솜사탕을 사야겠다. 다같이 손에 들고 한 입씩 뜯어 먹으며 슬픔 말고 설탕을 가득 담아 어머니 만나러 가야지. 입안 가득 단맛을 품고 양손 가득 달콤한 향을 담으면 그리움도 달콤하게 느껴질 날이 오겠지. 창문을 내리며 혹시나 설탕냄새가 날아올까 고개를 돌렸다. 메마른 하늘에 ㅡ 진부하지만,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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